I 두 개의 파이프
II 흐트러진 칼리그람
III 클레, 칸딘스키, 마그리트
IV 말들의 은밀한 작업
V 확언의 일곱 봉인
VI 그림은 확언이 아니다
르네 마그리트의 편지 두 통
원주
역주
1973년 프랑스 파타 모르가나 출판사에서 출간된 이 책은 푸코의 저술들 가운데 이례적인 데가 없지 않다. 단독 저술로 본문 80쪽이 채 못 되는 분량이며 푸코가 회화를 다룬 유일한 ‘책’이다(이 책을 제외하고 회화와 관련된 푸코의 직접적인 분석은 1966년 출간된 《말과 사물》 첫 장의 벨라스케스의 그림 〈시녀들〉에 대한 것이 유일하다. 20세기 초현실주의 회화를 대표하는 화가 중 한 명인 르네 마그리트의 ‘파이프 데생’을 매개로 한 이 얇은 책은 회화 자체의 근거에 대한 한 철학자의 물음이 겹겹이 중첩된 밀도감 있는 저술이다.
푸코에 따르면 15세기부터 이후의 서양 회화를 지배해 왔던 두 원칙은 조형적 재현과 유사(類似이다. 달리 말해 선과 색을 통해 대상-실제의 존재이든 가상의 존재이든-을 조형적으로 그것과 유사하게 재현하는 것이 회화라는 것이다. 미술 수업 시간의 서두에 놓일 진부하다고까지 할 이러한 규정이 사실 통상적인 회화의 암묵적인 구성 원리였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이 책에서 푸코는 누가 보더라도 알아볼 수 있는 파이프 그림과 그 아래 자리한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직접 쓴 문장으로 이루어진 마그리트의 데생 작품을 통해 회화 자체 내에서 제기된 “진부한 작품, 상투적인 수업”에 대한 이의제기를 파고든다. 조형적 재현이라는 원칙을 깨뜨리고 대신 (언어기호화된 형태를 배치하여 새로운 공간을 짠 파울 클레, 유사성에 바탕을 둔 재현을 거부하는 칸딘스키의 형태 없는 색과 선을 참조하면서 푸코는 이들과는 다르게 표면상으로는 전통적인 회화의 재현 방식을 따르는 듯한 마그리트의 그림들을 분석하고 그가 어떻게 “재현의 낡은 공간”을 은밀히 파 들어가는지를 보여 준다(그래서 푸코는 마그리트에게 “원근법이라는 오래된 피라밋은 무너질 지경의 두더지굴에 지나지 않게 된다”라고 말한다. “확언적 담론”의 획일성에 경계를 늦추지 않는 푸코의 인식론적 모색은 “재현적 단언과의 낡은 공모”에서 벗어나 제1의 원인-출발점, 근원 혹은 소위 모델-을 중심으로 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