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가 나타났다!
바다코끼리들이 사는 섬에 없는 한 가지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싫어’이다. 바다코끼리들은 모든 질문에 그냥 간단히 대답한다. ‘좋아’라고 말이다. 늦게까지 깨어 있고 싶거나 아침부터 달콤한 생일 케이크를 먹고 싶을 때면 ‘좋아’는 아주 좋은 말이다. 하지만 누가 따끔거리는 셔츠를 입으라고 하거나, 억지로 수염을 자르려고 한다면……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좋아’라고 대답해야 하는 상황이 무척 난감할 것이다. 그래도 할 수 없다. 바다코끼리들은 ‘좋아’밖에 모르니까. 그러던 어느 날, 바다코끼리들이 바닷가에서 신나게 공놀이를 하고 있을 때 한 아이가 나타난다. 그 애가 타고 온 배가 네트 가운데 걸려 버려서 바다코끼리들은 더 이상 공놀이를 할 수 없게 되고, 아이에게 배를 좀 치워 달라고 한다. 그런데 그 순간 그 아이 입에서 나온 말은…… ‘싫어’였다! 이럴 수가 ‘싫어’라니! ‘싫어’라는 말을 처음 들은 바다코끼리들에게 그 말은 마치 책장처럼 무겁고 커다란 바위처럼 단단하게 느껴진다. 이어서 그 애는 도넛 가게 앞에 줄을 서 있던 바다코끼리들에게로 향한다. 멋대로 새치기를 하고는 도넛 가게 사장님에게 “전부 다 두 개씩 주세요. 돈은 없어요. 괜찮지요?” 묻는다.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도넛 가게 사장님은 대답한다. “좋아…….” 양껏 도넛을 받아 나온 아이는 또다시 무법자처럼 섬을 휘젓고 다닌다. 바다코끼리들은 아이에게 또 무엇을 빼앗기게 될까?
책장처럼 무겁고 바위처럼 단단한 그 말! ‘싫어’
싫다고 말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갈등하기 싫어서,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눈치가 보이니까, 어려운 상대라서, 모두가 그게 맞다고 하니까,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아서, 상대가 화를 낼까 봐…… 등등 싫다고,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싫어가 없는 섬』에 사는 바다코끼리들은 아예 ‘싫어’라는 말을 알지도 못했다. 그래서 낯선 아이가 나타나 제멋대로 섬을 휘젓고 다녀도 누구하나 제지하지 못한다.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