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집애가 『논어』를 배워 어디에 쓰려고?”
“저는 누군가의 딸, 아내, 어미로만 살지 않을 거예요. 제게도 꿈이 있어요!”
여자가 글을 알면 손가락질받던 시대, 재주라고는 읽고 쓰는 능력뿐인 홍 판서 댁 외동딸 홍조이. 그리하여 매일 같이 주변 사람들은 물론, 아버지에게까지 타박을 당하기 일쑤다. 시대의 높은 벽 앞에서 오늘도 조이는 한숨뿐이다.
“계집애가 『논어』를 읽어 어디에 쓰려고? 네 오라비처럼 성균관에라도 들어가려고?”
“네, 들어갈 수만 있다면 들어가고 싶어요. 공부로 겨뤄 사내들을 이길 자신도 있고요. 아마 저보다 못한 사내가 수두룩할걸요!” (26쪽
조이를 나무라는 대신 응원을 보내 주는 한 사람, 바로 오빠의 친구 윤 도령. 한양의 줄불놀이에서 마주한 둘은 좋아하는 마음을 서로 품게 된다. 하지만 윤 도령의 출신은 첩의 자식, 즉 서자이다. 그렇기에 엄연한 신분의 벽이 둘 사이를 가로막고 있다. 시대의 한계 앞에서는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조차 쉽게 드러낼 수 없다.
“불꽃이 아가씨 눈동자에도 피었네요. 눈동자가 마노처럼 참 예쁩니다.”
‘예쁘다.’
조이는 그 말을 속으로 되뇌었다. 눈동자라 콕 집기는 했어도 태어나 처음 듣는 말이었다. 평생 들을 일 없을 거라 체념해 온 말이기도 했다. (13쪽
그러던 어느 날, 조이에게 엄청난 사건이 불어닥친다. 성균관 유생인 오라비가 ‘벽서 사건’에 휘말리며 집안이 풍비박산 나고, 하루아침에 좌포청 관비가 되고 만 것이다.
“조이야. 세상이 미쳐 갈수록 여인이 살기는 힘들어진다. 어떤 모진 일을 겪더라도 자신을 부끄러워하거나 탓하지 마라. 다시 만날 때까지 잡초처럼 살아남아라. 꼭 살아남아라. 그리고 절대로 아버지와 오라비 때문에 울지 마라.” (47쪽
다모(조선 시대의 여성 형사 분이의 집에 얹혀살게 된 조이는 “잡초처럼 살아남으라”는 오라비의 당부를 떠올리며 꿋꿋이 버티지만, 글재주밖엔 없다 보니 항상 구박받는 천덕꾸러기 신세이다.
명랑 탐정 홍조이의 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