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현실에서 빼앗긴 얼굴, 하지만 지워지지 않는 현실의 낙인
기술이 발전하면서 우리는 점점 더 온라인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메타버스 같은 가상 현실 속에서는 무엇이든 원하는 모습이 될 수도 있고, 어느 누구와도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자유로워 보이는 세계가, 어느 순간 우리의 실제 삶을 옭아매기도 한다.
2024년, 한국을 뒤흔든 디지털 범죄 사건이 있었다. 딥페이크 기술을 이용해 피해자의 얼굴을 음란물에 덧씌운 영상이 텔레그램 채팅방을 통해 거래되었다. 피해자는 대부분 여성 청소년이었고, 심지어 초등학생도 포함되어 있었다. 자신이 찍지도 않은 영상 속에서 자기 얼굴을 본 피해자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 충격은 영상이 더 퍼지지는 않을지, 아는 사람이 보게 되는 건 아닌지 하는 공포로 이어졌다.
『도둑맞은 얼굴』에도 비슷한 상황이 등장한다. 이 책은 메타버스라는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세계를 들여다보며 우리가 맞닥뜨릴지도 모를 또 다른 디지털 범죄의 가능성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신기술이라는 미로 속, 우리가 우리를 잃지 않으려면
청소년들이 온라인 세계에 자연스레 발 담그고 살아가는 지금, 『도둑맞은 얼굴』은 단순히 디지털 성범죄를 이야기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나아가 가상 현실이 우리의 정체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그곳에서 맺는 관계가 현실에까지 어떤 방식으로 작용하는지를 탐구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에 맞춰 자신을 바꾸고 또 다른 모습을 만들어 낸다. 그러다 보면 결국, 진짜 ‘나’를 잃어버리기 쉽다. 이 책에 등장하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가상 현실에 빠진 쌍둥이 재이와 유리도 그런 위기에 처해 있다.
―재이, 가상 세계에서 살아가는 아이
재이와 유리는 같은 날, 같은 인공 자궁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둘의 삶은 전혀 달랐다. 야무지고 유쾌한 성격의 유리는 어디서든 환영받았고, 소심하고 의심 많은 재이는 늘 좋지 않은 시선을 받았다. 재이는 점점 유리와 거리를 두었고, 유리를 외면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