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3월, 나는 내과 전공의를 시작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초보 진료 의사였다. 어느 날 응급실을 통해 열과 전신 통증을 동반한 환자가 지방에 있던 개인 병원에서 전원되었다. 당시 내가 근무하던 병원에는 매일 저녁 9시, 주임 교수님께 병동과 중환자실 환자 상태를 보고하는 전통이 있었다. 응급실을 통해 입원한, 진단이 불분명했던 이 환자는 교수님의 관심을 끌었고 그 주의 증례 토의 대상으로 지정되어 나는 내과의 모든 의료진 앞에서 발표를 해야 했다. 훌륭한 교수님들 앞에서 진단이 불분명한 이 환자의 감별진단과 진단방법, 치료를 토의하는 것은 영광이기도 했지만 커다란 부담이기도 했다. 교과서에 나오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열에 대한 다양한 질병에 대하여 공부를 시작하면서 최신 논문을 읽었다.
1980년경 진해에서 개업하고 있던 내과의사 이강수 선생님은 원인을 알 수 없는 고열, 오한, 두통을 주로 호소하고 발진과 림프절 비대를 동반한 환자를 경험하였다. 비슷한 증상의 이 환자들은 가을이면 많아졌고 특히 1981년과 1985년에 많았다. 놀랍게도 이강수 선생님은 이런 증상의 환자를 다른 환자들과 구분하기 위하여 진찰 기록부에 “eruption fever(발진을 동반한 열성 질환”라는 진단명을 붙이고 관리하였다. 선생님은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임상병리과, 소아과와 일본 군마현 환경공해연구소의 도움을 받아 1985년 11월 9일부터 1986년 1월 24일까지 진해 이내과에 내원한 환자 중에서 고열, 오한, 두통, 근육통, 발진이 있던 34명 중 24명에 대하여 리케치아 감염을 확인할 수 있는 와일-펠릭스 반응시험을 할 수 있었다. 21명이 항체 양성으로 쭈쭈가무시 병임이 규명되었다. 우리나라 사람에서 쭈쭈가무시 병이 최초로 확인된 순간이었다. 이 결과는 1986년 대한미생물학회지에 발표되었고[1] 많은 전문가들의 관심을 끌었다. 1987년 한국역학회는 1981년부터 1985년까지 이강수 선생님의 환자 진찰기록부를 확인한 결과, 총 80명의 환자가 “er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