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조국의 독립과 국권의 수호를 위해 일어나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한 호국룡(護國龍
유능한 중재(仲裁 엘리트로서, 조국과 백성을 수호하는 데 헌신한 임병찬은 국권을 지킨고 나라를 되찾기 위해 전심전력을 다했다. 그는 을사늑약 늑결 후 무산서원에서 의병을 일으켰고, 경술국치 후 광무황제의 밀칙(密勅을 받고 전국적 규모의 ‘대한독립의군부’를 결성하여 의병전쟁을 일으켰다. 그는 이 과정에서 일제에 의해 네 번이나 체포되었고 대마도와 거문고 등 절해고도에 유폐당했으며, 큰 고초를 겪다가 거문도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조국의 독립과 국권의 수호를 위해 일어나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한 호국룡(護國龍
유능한 중재(仲裁 엘리트로서, 조국과 백성을 수호하는 데 헌신한 임병찬은 국권을 지킨고 나라를 되찾기 위해 전심전력을 다했다. 그는 을사늑약 늑결 후 무산서원에서 의병을 일으켰고, 경술국치 후 광무황제의 밀칙(密勅을 받고 전국적 규모의 ‘대한독립의군부’를 결성하여 의병전쟁을 일으켰다. 그는 이 과정에서 일제에 의해 네 번이나 체포되었고 대마도와 거문고 등 절해고도에 유폐당했으며, 큰 고초를 겪다가 거문도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충성심과 의리, 공명심은 일본인조차 두려워하며 공경해 마지않았다. 물론 그가 동학농민전쟁의 지도자인 김개남 체포에 앞장선 일도 있었고, 근왕의식에 충실한 복벽주의자로서의 한계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는 국가를 보존하고 민생을 안정시키기 위한 활동에 온몸을 바친 훌륭한 지도자였다. 따라서 그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한 호국룡(護國龍으로 충분히 비유될 수 있다. 이러한 그를 스승인 최익현은 웅크리고 있는 호랑이로 평했으며, 그의 위엄스런 자세는 사나운 호랑이와 같으며 풍채는 봉황과 같다고 평하는 사람도 있었다.
또한 그는 중재 능력이 탁월한 엘리트였다. 향리 시절, 조선말 문란하기 그지없던 수취체제 속에서 수령과 농민 사이의 갈등을 탁월하게 중재하기도 했다. 이 일로 수령과 관찰사를 감탄시켰을 뿐만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