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전은 공연예술의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하는 파르마콘이다
IMF 사태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문화의 경제적 가능성에 대한 담론이 폭발하였다. 문화는 곧 돈이라는 사유가 우리 사회를 압도하였고, 많은 문화관련 하드웨어가 건립되었다. 수많은 축제는 공동체의식의 함양보다는 지자체에 부를 안겨줄 경제적 수단으로 인식되어 왔고 지자체들이 앞다투어 유치하고 있는 메가퍼포먼스는 지자체의 자랑이 되었다. 마치 문화는 우리의 경제적 어려움으로부터 구원해 줄 구세주처럼 인식되어 온 것이다. 우리는 문화의 경제성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문화에 대한 이러한 경제적 관심은 공연산업에도 전이되었다. 공연예술의 산업적 가능성에 대한 관심은 민간부문은 물론이고 공적 부문으로까지 확산되었다. 대학에는 많은 공연관련 학과들이 설치되었고 공연의 산업화라는 담론이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이에 따라 많은 공연 기획사들이 설립되고 외국 뮤지컬들이 쏟아져 들어왔으며, 공적부문은 공연산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였다.
그러나 현재의 시장상황은 어떤가?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공연산업의 어려움은 이미 영국이나 일본에서 300~400여 년 전에 경험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 나라의 실패들이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그대로 재연되고 있다. 공연산업, 공연흥행의 역사가 일천한 영세한 시장에서 시장은 과열되고 , 경쟁이 격화되면서 발생한 것이다. 공연 시장의 어려움에는 많은 사회적 요인이 작용한다. 그러나 필자는 이런 사회적이고 외재적 요인 이외에도 보다 근본적인 원인, 내재적인 원인이 있다고 주장한다. 소비를 제약하고 생산을 어렵게 하는 공연예술의 매체적인 한계에 기인한다고 본다. 그것은 ‘현전’이라는 근본적인 매체성 때문이다.
볼터와 그루신은 인간은 ‘비매개에 대한 욕망’을 갖는다고 하였는데 이는 다른 말로 표현하면 ‘직접성’에 대한 욕망이다. 인간은 누구나 대상을 자기 눈으로 확인하고 싶거나 대상의 진실을 알고 싶어한다. 또한 대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