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눈치 못 채게 내가 되어 줘. 부탁해.”
분주한 아침, 바쁘게 외출 준비를 하는 동안 한가로이 소파에 누워 있는 반려동물을 보고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보았을 것이다. “쟤는 참 좋겠다.” “강아지로 살면 팔자 참 편하겠지?” “학교 안 가도 되고, 출근 안 해도 되고.” “근데 집에서 혼자 뭐 하고 놀지?” 함께 하는 반려동물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내가 외출한 동안 종일 혼자서 어떤 시간을 보내는지, 그리고 또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만약 동물로 살아본다면 또 어떨지. 『안경을 쓴 가을』은 작가 이윤희가 12년 동안 함께 한 반려견 ‘가을이’를 모티프로 상상력을 더해 만든 첫 만화집이다. 자신의 반려견 ‘가을이로 살아보면 어떨까?’ 하는 단순한 호기심에서 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사람으로 사는 것도 개로 사는 것도
『안경을 쓴 가을』의 주인공이자 강아지인 ‘가을이’는 당분간 자신의 역할을 대신 해 달라는 주인 ‘형(중2병 말기증세에 시달리고 있다.’의 부탁을 받고 인간의 삶을 대신 살게 된다. 형이 준 안경을 쓰면, 모두 가을이를 사람으로 보기 시작한다. 동물에게는 필요치 않은 사람의 물건인 안경이, 가을이가 사람으로 보이게끔 해 주는 매개체가 되는 것이다. 얼떨결에 하루아침에 사람 행세를 하게 된 가을이는 다소 어설프지만, 형의 역할을 멋지게 잘해낸다. 학교도 다니고, 집안일도 돕고, 사람이 먹는 음식을 맛있게 먹으며 사람으로서의 삶을 즐긴다. 하지만 개로 살 때도 그저 쉽지만은 않았는데 인간으로 사는 것도 마냥 쉽지 않다. 복잡다단한 인간 사이의 관계 속에서 가을이는 점차 고독을 느끼며 형의 부재로 인한 불안감과 그리움을 느끼기 시작한다.
우리 주변 이웃들의 삶과 그 이웃들의 반려동물 이야기
『안경을 쓴 가을』에는 사람으로 살게 된 개, 가을이 외에도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좁은 땅 안에서 가까이 이웃해 살고 사람들의 삶이 스치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