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는 선과 악의 이야기가 교차하는 매력적인 액체다.”
베테랑 심장외과 전문의가 전하는
피의 비밀과 그 흐름 뒤에 숨은 수수께끼
괴테의 희곡 《파우스트》에서 주인공 파우스트는 세상의 모든 지식을 얻기 위해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자신의 영혼을 판다. 메피스토펠레스는 파우스트의 피로 서명된 영혼 매매 계약서를 손에 쥐고 다음과 같이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피는 특별한 액체다!”
붉은 피는 흔히 ‘약동하는 생명’을 은유한다. 하지만 피가 언제나 삶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몸에서 흘러나가 돌아오지 않는 피는 곧 죽음이다. 피는 생명을 잉태시키기도 하지만 목숨을 앗아가기도 한다. 수혈을 통해 우리는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지만, 많은 전염병이 혈액을 매개로 옮겨지기도 한다. 인간은 피의 이름으로 뜨거운 정의를 외치고 진한 우정과 변치 않는 사랑을 약속한다. 한편 전쟁, 사고, 폭력, 희생, 복수가 있는 곳은 언제나 피로 얼룩진다. 이처럼 피는 선과 악의 이야기가 교차하는 매력적인 액체다.
《피, 생명의 지문》은 지난 30여 년간 신경심장학 및 심리심장학을 연구하며 몸(심장과 마음(의식의 관계를 탐구해온 심장외과 전문의가 ‘피에 관한 세상의 거의 모든 지식’을 전달하는 대중 교양 과학서다. 이 책은 과학 교양서이지만 전개 방식이 독특하다. 칼이 심장에 꽂힌 채 응급실에 실려 온 ‘하미트’의 수술과 회복 과정 및 그가 겪은 살인미수 사건의 내막을 파헤치는 미스터리한 스토리가 한 축을 이룬다. 이 이야기에 의학적이고 과학적인 설명이 곁들여지면서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넘나드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심장외과 의사는 엄밀히 말해 혈액외과 의사다.”(라인하르트 프리들
물론 피를 여느 장기들처럼 수술할 수는 없다. 심장외과 의사는 심장을 고치는 전문가이자 심장에서 분출된 피가 심방과 심실, 판막과 혈관을 통해 제대로 된 방향으로 원활하게 흐르도록 조정하는 사람이다. 그런 면에서 심장외과 전문의인 저자가 ‘피’에 대한 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