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트 제도, 짓밟히고 부서진 존재인 불가촉천민의 문제
아룬다티 로이는 소설 『작은 것들의 신』을 쓴 인도 작가다. 1960년대 인도 반도의 서쪽에 있는 케랄라를 배경으로 아무의 집안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비춘다. 이란성 쌍둥이 에스타와 라헬의 성장기는 영국인 사촌의 사고사를 기점으로 변곡점을 맞는데, 기이하게 신비로운 대자연 속에서 펼쳐지는 관능적인 사랑의 묘사에 황홀경에 젖다가도 비극의 전개가 쌍둥이의 뱃사공 친구이자 불가촉천민인 벨루타에게 가닿는 과정은 지극히 고통스럽다.
아룬다티 로이는 인터뷰를 통해 “픽션이든 논픽션이든 내게는 동일한 문학적 활동”이라며 1997년 부커상 수상 이후 『지복의 성자』가 활자화되기까지 20년간 논픽션만 줄곧 써온 데 대한 세간의 의문을 불식시켰다. 핍박받는 자들을 집중 조명하는 아룬다티 로이가 통역사로서의 역할을 자처하며 『박사와 성자』 집필을 통해 기꺼이 그편에 서고자 한 인물이 바로 암베드카르다.
암베드카르는 인도의 사회 개혁운동가, 정치가로 카스트로는 불가촉천민 출신이다. 봄베이(현 뭄바이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미국과 영국에 유학했고 불가촉천민제 철폐운동에 몸을 던져 사회 개혁 단체나 정당을 결성하고 대중운동을 지도했다. 암베드카르는 1936년 라호르에서 특권 카스트 힌두교도 청중에게 카스트 제도의 불합리성을 설파하는 연설을 할 계획이었다. 초대 주체가 카스트제의 불합리성에 대한 자각이 없지 않은 개혁 단체였음에도 힌두교의 근본에 대한 지적 공격이 불편했던 그들은 돌연 그 초청을 철회하고 말았다. 준비된 연설문은 『카스트의 소멸』이라는 이름의 팜플렛으로 회중을 떠돌다가 2014년에야 인도와 영국, 미국에서 연이어 정식 출판되었는데 아룬다티 로이는 78년이라는 간극, 음성으로 전달되려던 텍스트가 문자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부담, 인도 밖에서 달리 이해될 것이 분명하다는 염려를 해소하기 위해 이 본문에 대한 장대한 서사시와 같은 입문서를 써 내려갔고 그것이 바로 『박사와 성자』다.
암베드카르와 간디의 논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