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물론석」, 주석서라는 형태의 한계를 넘어 ‘자신의 주장’을 펼치다”
저자 장타이옌은 청나라 말기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과 중국 고유의 정신적인 토대를 놓고자 한다. 그의 관심은 단순히 학술적 영역에 머물지 않고 스스로가 혁명운동에 참여하거나 직접 혁명 사상의 토대를 구성하는 등 수많은 분야를 넘나들었다. 그가 다룬 학술 분야만을 살펴보더라도 도가·묵가·명가 등 제자학, 「설문해자」·「이아」·「방언」 등 언어학, 유식학·인명학·대승기신론 등 불교철학, 칸트·쇼펜하우어·니체 등 서양철학, 민주주의·제국주의·사회주의·무정부주의 등 근대정치사상, 아네사키 마사하루 등의 일본 메이지 학술 등을 망라했다. 그리고 바로 「제물론석」에서 이런 다양한 학문이 교차하고 있음이 매우 잘 드러난다.
이렇게 많은 학문이 교차할 수 있었던 까닭은 거의 완벽한 의미의 고증학자 장타이옌이 오히려 적극적으로 ‘근대’를 맞았기 때문이다. 그는 전통 속에 있지만 결코 전통을 추수하지 않았고, 서구 근대를 적극적으로 동원했지만 서구 근대에 쉽게 투항하지 않았다. 거꾸로 말하면 「제물론석」은 서구 근대에 저항한 장타이옌의 사상을 잘 보여 주는 이정표인 것이다. 따라서 「제물론석」은 그 형태에 있어 장자의 「제물론」을 나누어 구성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근대 중국인의 핵심적인 이념을 주장하는 저작이라고 할 수 있다.
역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누가 언제 만든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일찍이 중국 학술계에 ‘장문개천(章門蓋天’이란 표현이 나돌았다. ‘장타이옌 문하 제자가 천하를 덮었다.’라는 뜻인데, 물론 중국식 과장이지만 이 말로 ‘장타이옌 제자’[章門弟子]의 이후 활동을 어림잡을 수 있다. ‘학통’이 때론 과거의 답습이자 편견의 유전일 수도 있지만, 때론 그것이 학자에게 자존심이 되고 학문함에 기상을 부여하기도 한다. 그것이 ‘하나의 힘’임에는 틀림없다. 현재 중국 학술계에서 장타이옌은 정치가나 불교학자가 아니라 근대 국학의 건설자로 굳건히 자리 잡았다. 최근 일본과 중국 학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