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Ⅰ. 문제의 발단
1. 문제 제기
2. ‘독도의용수비대’에 대한 법적 규정
3. 선행 연구
4. 논란의 시작과 전개
5. 최근의 연구 동향과 정부 입장
Ⅱ. 서훈 관련 공문서의 변천
1. 1966년의 서훈 문서
2. 1977년 홍순칠의 서훈 청원 무산
3. 1996년의 서훈
Ⅲ. 1965~1996년 수비대 소개의 변질 과정
1. 1966년 서훈 이전 한일관계와 홍순칠
2. 「독도수비대 비사」(1965와 언론 보도
3. 「독도수비대」(1970 전후의 언론 보도
4. 홍종인과 홍순칠
5. 「(도큐멘타리 독도수비대」(1978
6. 『동해의 수련화』(1981
7. 『월간 학부모』 (1979-1985년 연재 추정
8. 『개척 백년 울릉도』(1983와 이후의 언론 보도
9. 「독도의용군 수비대」(1985와 그 이후
10. 『울릉군지』 (1989
11. 1996년의 서훈 전후
12. 「독도의용수비대지원법」(2005의 제정, 그리고 현재
Ⅳ. 홍순칠과 수비대의 행적에 관한 검증
1. 일본의 영토 표목 설치와 수비대 결성의 계기
2. 조부 홍재현의 영향 관계
3. 수비대 결성과 무기 조달 및 최초 입도
4. 첫 교전에 대한 검증
5. 가짜 영장
6. 1953~1954년 일본의 침범에 대한 격퇴
7. 정부와의 관계에 대한 검증
8. 1966년의 훈장 반납
9. 기타 사항에 관한 검증
10. 경찰 인계에 대한 검증
Ⅴ. 쟁점 정리
1. 홍순칠의 가계와 이력에 대하여
2. 가짜 영장에 대하여
3. 무기 조달에 대하여
4. 수비대 결성 시기와 활동 기간에 대하여
5. 교전 사실과 횟수에 대하여
6. 33인의 국가유공자에 관하여
7. 자료와 증언의 공신력에 관하여
에필로그
참고문헌
찾아보기
‘독도를 지킨 헌신적 지도자,
그러나 공적 과장과 불공정 논란에 대해 알아본다’
울릉도민에게 독도의용수비대는 자랑스럽겠지만 동시에 부끄럽기도 할 것이다. 한국전쟁 뒤의 혼란기에 일본인들이 독도를 침범했을 때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독도를 지켜냈다는 의미에서는 자랑스러운 역사이다. 그러나 그 공적이 터무니없이 과장되었고 훗날 포상에서의 불공정함이 불거졌는데다 그 불공정을 초래한 장본인이 수비대장이라는 의미에서 이는 부끄러운 역사이다. 우리는 일본에만 역사적 진실을 왜곡하지 말라고 요구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치부도 드러내고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독도의용수비대의 행적을 바로 알자는 것이지 그들의 공적을 부정하거나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여러 악조건 속에서 일정 기간이지만 수비대가 독도를 수호한 행동은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홍순칠의 의도가 어떠했든 국가의 공권력이 제대로 행사되지 못할 때 수비대가 그 틈을 메꾼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