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서
조문객의 줄이 길게 이어졌다. 장례식 진행을 보는 사람은 그의 조카이다. 조카는 그날 장례식에 참가한 주요 인사를 소개했다. 휠체어를 타고 참석한 머스 커닝햄과 제자 빌 비욜라, 그와 함께 플럭서스 멤버로 활동했던 오노 요코, 그리고 한국, 일본, 독일, 네덜란드, 프랑스. 여러 나라의 인사들. 평소 가까웠던 지인들이 돌아가며 죽은 이와의 회고담을 들려준다.
먼저 오노 요코가 말한다.
“1970년대 초기 뉴욕에서 나는 백 선생과 함께했습니다. 그의 예언자적 기질과 천재성은 여러분도 모두 잘 아시지요.”
조문객들은 그의 말에 동의하며 손뼉을 친다.
나무, 다리, 섬까지 천으로 싸 버리는 대지 예술가 크리스토와 그의 부인 잔 클로드도 장례식에 와 주었다.
“나는 언젠가 남준에게 피아노를 빌려 붕대로 싸는 작업을 하여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전시를 마치고 돌려주었더니 남준이 골이 나서 그걸 다 풀어 버렸지 뭡니까? 아마 지금 저기 누워서 남준은 그 일을 가장 후회하고 있을 것입니다.”
하하하….
조문객이 웃었다. 그러자 크리스토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걸 그대로 놔뒀더라면 아마 지금은 수백만 달러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부자가 될 수 있었을 텐데. 정말 아깝습니다”
조문객들이 다시 한번 크게 웃는다.
그렇다. 그때 그는 골이 나 있었다. 다른 친구에게 빌려준 피아노가 엉뚱하게도 광목 쪼가리에 칭칭 감겨서 크리스토의 전시장에 있었으니까.
- 19~21쪽
남준은 아버지를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아버지가 왜 형들은 놔두고 자가를 데리고 간 것일까? 하는 불만도 있었지만, 음악에만 빠져 있는 관심을 돌려 보려고 했었다는 걸 후에 알게 되었다. 당시 남준은 17세였고 여권번호는 7호 아버지가 6호였다. 한국전쟁 6, 25가 발발하기 1년 전이다.
아버지는 인도의 한 상인을 만났다. 그리고 남준에게 통역을 하라고 시켰다. 하라고 하니 꼼짝없이 하기는 했지만 그건 신통치 않은 통역이었다. 사실 아버지는 스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