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면서
서장 일본은 언제 통일되었나?
- 강대국 백제와 수많은 소국으로 분열된 왜 -
제1부 백제의 왜국 통치
1장 백제인이 왜로 가져간 신화와 전설, 민속
1. 백제인이 가져간 백제의 전설
2. 천조대신과 유화부인, 소서노
3. 구지봉 전설과 고천원
4. 주몽의 건국설화
5. 설화 속의 백제어
6. 「정사암(政事巖 회의」 전설과 부여삼산
7. 백제인이 가져간 풍습, 민속과 놀이
1 백제의 굿과 무당도 왜국으로 / 2 백제인이 가져간 대장군(장승 / 3 혼불
4 윷놀이와 팽이 / 5 백제인들이 가져간 바둑 / 6 왜국 백제인들의 「활놀이」
7 고대 일본의 축국 / 8 매사냥
2장 백제인의 왜국 통치
1. 칠지도 - 왜국은 속국, 왜왕은 후왕(侯王
2. 백제 대왕, 왜왕 즉위식의 칼을 하사하다
3. 천황가는 부여씨
4. 성왕의 지엄한 「명령」으로 전파한 불교
5. 백제대궁(百濟大宮과 백제대사(百濟大寺
6. 국호 「일본」은 백제의 미칭
7. 백제 멸망 이후 비로소 왜국이 독립하다
8. 천황의 대상제(大嘗祭에서 부르는 「한신(韓神」
3장 왜왕은 백제의 왕자
1. 백제 왕자들의 일방적인 도왜
2. 왜왕 전지
3. 왜왕 곤지
4. 왜왕 말다(末多 후일의 동성왕
5. 왜왕 사마(후일의 무령왕와 남동생왕(男弟王
6. 왜왕 주군(酒君
7. 왜왕 아좌
8. 왜병을 동원하러 건너간 계(季 왕자
9. 작고 초라한 왜왕의 궁전
10. 왜 5왕
4장 왜왕 부여풍
1. 인질인가 왜왕인가?
2. 왜왕 부여풍과 백제 구원군
3. 왜왕 부여풍의 소아(蘇我씨 처단
5장 백제인들이 붙인 왜국의 지명
1. 지명은 역사의 산 증인!
2.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붙인 한국의 지명
3. 일본 지명에 남은 백제
6장 왜국 지배층의 언어, 백제어
1. 지배층의 공용어는 백제어
2. 일본어 속의 수많은 백제어
3. 일방적으로 건너간 백제어
제2부 『일본서기』는 위서僞書다
1장 『일본서기』의 창작
백제가 왜국을 통치하였고, 『일본서기』는 창작된 위서다
이 책의 내용을 간단명료하게 요약하면, ‘백제가 왜를 통치하였고, 『일본서기』는 창작된 위서다’라는 내용이다.
약간 살을 붙이면,
① 『일본서기』에 나오는 시조 신무부터 37대 제명까지, 37명의 왜왕은 창작된 가공인물이다.
② 실제 왜왕은 백제에서 파견된 왕자, 지배층은 백제의 귀족들이었다.
③ 따라서 『일본서기』는 창작된 역사를 기록한 위서이며, 임나일본부는 후세 누군가의 허무맹랑한 가필이다.
④ ‘~마로’, ‘~다리’ 등 귀족들의 인명은 모두 한국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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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대부분의 문물이 백제풍 일색이었다. 근세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한국의 지배층이 되어 통치하면서, 모든 면에서 엄청난 영향을 끼친 것과 전혀 다를 바 없는 현상이 고대의 왜국에서 벌어졌던 것이다.
일본의 정사 『일본서기』는 창작 역사 소설집에 불과하다
- 고대 많은 한국인이 집단적이고 조직적으로 도왜하여 왜인들을 통치하였다
- 출발부터 위서인 『일본서기』는 가필과 변작까지 더해져 더욱 흉측하게 변질되었다
19세기 이후의 한국 근세사를 서술하기로 마음먹는다면,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일본의 역할을 빼놓고는 도저히 쓸 수가 없을 것이다. 그만큼 일본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일본의 근세사를 기록할 때는 한국을 빼놓아도 별문제가 없을 것이다. 한국의 영향력이 대수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5~7세기의 고대사는 어떨까? 근세사와는 정반대의 현상이 벌어질 것이 분명하다. 즉 일본의 고대사를 기록하기 위해서는 가야와 백제 등 고대 한국 여러 나라에서 건너간 기마문화, 스에키라 불리는 획기적으로 발전된 토기, 환두대도 등의 무기. 귀걸이와 금동관 등의 장신구, 무덤의 형식인 횡혈식 석실, 불교와 한자문화 등등, 고대 한국의 문화와 한국에서 건너간 도래인의 역할을 빼놓고는 도저히 서술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무렵의 고대 한국사를 쓴다고 할 때는, 왜를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