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농악/풍물굿 중에서 근대화를 가장 먼저 시작한 정읍농악/풍물굿
1910년대부터 ‘보천교의 종교음악’으로 채택되어 전국의 농악/풍물굿 명인들을 두루 불러 모아 한 데로 아우름으로써, 바야흐로 우리 농악/풍물굿의 근현대화가 시작 되었습니다. 이러한 정읍농악/풍물굿의 위대한 업적은 이후 우리나라 전국 방방곡곡의 농악/풍물굿으로 퍼져나가, 지금은 정읍농악/풍물굿의 판제나 가락이 전국의 농악/풍물굿의 예술적 수준을 드높이는 데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예컨대, 정읍농악/풍물굿 ‘장구놀이’는 현재 전국 농악/풍물굿의 장구 개인놀이 판제에 두루 전파되어, 각 지역농악/풍물굿의 예술적 수준을 크게 제고시켜 놓았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여러 가지 내외의 사정들로 인하여 정읍농악/풍물굿은 그 합당한 문화재로서의 위상과 좌표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채, 지금까지 면면히 그 새로운 전통을 유지해 왔습니다. 다행히, 유지화, 김종수 명인을 중심으로 하여, 정읍농악/풍물굿은 이제 우리나라 ‘근대농악’의 중심에 우뚝 서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유형문화재 쪽에서의 ‘근대 유형문화재’와 같은 것으로서, 우리가 반드시 제대로 인정해야할 우리나라 근대 무형문화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