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중엽, 동아시아를 향한 서구열강들의 본격적인 진출이 시작되자, 그곳에 살던 지식인들은 이 새로운 도전(혹은 위기를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각자의 위치에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눈앞에 마주한 위기상황의 타개책으로 많은 이들이 군비의 확장이나 무기의 도입과 같은, 현실적이고 즉각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그런 가운데, 엉뚱하게도 군권의 제한(입헌정체과 분권적 정치의 시행(의회제도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있었다.
도나리구사(隣草는 일본에서 서구의 입헌제와 의회제도를 본격적으로 소개한 최초의 저서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의 저자 가토 히로유키(加藤弘之는 훗날 일본 최초의 근대적 대학으로 탄생한 도쿄대학(東京大學의 초대 총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이 책의 흥미로운 점은, 국가의 위기상황에서 그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이 ‘무비(武備’의 보강과 같은 외형적인 것이 아니라, 그 정신으로서의 ‘인화(人和’를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언뜻 전통적이고 고루하게 비춰질 수도 있는 이런 논리는, 그러나 그것이 동아시아에서 최초로 헌법과 의회 제도를 설치함으로서 소위 ‘근대적’인 국가체제를 수립할 수 있었던 일본의 전통이 어디에 닿아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를 보여준다. 주목할 만한 것은, 그가 본격적으로 서구의 학문을 수용하기 시작하는 시점에서, 즉 ‘전통적인 지적 기반’에서 서구의 제도를 이해하고 그 타당성을 주장했다는 점이다. 전통적인 정치의 이상, 즉 ‘인화’를 도리어 서구의 제도를 수용하고 채택함으로써 달성할 수 있다는 발상은, 당시 지식인들로서는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음에 분명하다. 무엇보다 전통적인 ‘무국(武國’이었던 일본의 지식인이(심지어 가토는 무사집안의 후계자였다 도리어 ‘인화’의 달성과 그 방법으로써 분권제도를 채용하는 것이 국가를 지켜내는 왕도(王道임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근대 일본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지적 전통과 근대서구지식의 만남이 어떤 화학적 반응을 일으켰는지, 어떤 결과를 낳을 수 있었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