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여 년 만에 다시 찾은 이름
외규장각에 보관된 의궤의 자부심은 대단합니다. 강화도의 선선한 바닷바람과 맑은 공기까지, 의궤는 언제나 즐겁고 행복한 나날을 꿈꿔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외규장각 책방 문이 열리더니 낯선 냄새, 낯선 목소리, 낯선 발소리가 들려왔죠. 프랑스의 습격이었어요. 거친 손길은 의궤를 상자에 담더니 알 수 없는 곳으로 끌고 갔죠. 망망대해를 건너고 다시 옮겨지기를 여러 번, 몇몇은 팔려가고, 몇몇은 버려졌어요. 남은 의궤들은 프랑스의 낡은 도서관 창고 안에 갇혔죠. 캄캄한 어둠 속, 할 일이라곤 고향을 그리워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뿐이었어요.
그렇게 100년도 넘는 시간이 훌쩍 지나간 어느 날이었어요.
“이제야 만났어! 조선 의궤! 외규장각 어람용 의궤!”
얼마나 듣고 싶던 이름이었는지! 드디어 의궤를 알아보는, 진짜 이름을 불러 주는 조선 사람이 찾아왔어요. 의궤들은 얼싸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립니다. 의궤는 고향으로 돌아가 다시금 귀하고 곱게 쓰일 날을 그리기 시작해요.
20년에 걸친 싸움 - “프랑스에 잡혀 왔다고
우리가 프랑스 것이 될 수는 없어.”
하지만 고향으로 가는 길은 쉽게 열리지 않습니다. 의궤는 오랜 시간 동안 다시 어둠 속에 갇혀야 했어요. “빼앗아 간 문화재를 돌려 달라”는 대한민국과 “프랑스에 들어온 문화재는 이미 프랑스 것”이라는 프랑스 입장이 팽팽하게 맞섰어요.
문화재 반환을 둘러싸고 우리나라 시민과 학계가 나섰어요. 어린이들은 대사관과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편지를 썼죠. 프랑스 지식인들 중에도 문화재 반환 운동에 동참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었어요.
마침내 다시 고향으로
2011년 봄, 어람용 의궤는 강화도 외규장각을 떠난 지 꼭 145년 만에 비행기를 타고 대한민국으로 옵니다. 우리나라는 이봉행렬(중요한 의물을 봉안한 가마를 모시는 조선 시대 의식로 의궤를 맞이했어요. 1783년 규장각에서 어람용 의궤를 비롯한 도서들을 외규장각으로 옮기는 과정을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