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책을 펴내며
축사
사신 왕래와 당대 동아시아 삼국의 문화 교류
: 새로 발견된 묘지명과 碑刻 자료를 중심으로[拜根興]
1. 서론
2. 天寶?大曆 연간의 당-신라 간의 각계 인사들의 교류
3. 묘지명에 보이는 당대 중?후기 신라에 갔던 당나라 사신들
4. ‘日本’이라는 국호가 출현하는 묘지명과 吳懷實의 묘지명
5. 결론
임진왜란과 바다를 건너간 전쟁포로, 굴절된 기억과 서사적 재구
[정출헌]
1. 서론
2. 남기지 못한 기억: 돌아오지 못한 전쟁포로에 대한 편린들
3. 굴절된 기억: 귀국 포로에 대한 의혹과 자기방어
4. 서사적 재구: 귀국 포로의 구술과 재구된 기억
5. 결론
박엽(朴燁에 대한 기억의 재구성과 그 의미
: 1623년 處刑 前後부터 1864년 官職 回復 前後까지의 기록을 대상으로[엄태웅]
1. 서론: 중국소설 애호가이자 허균의 친구 박엽
2. 박엽 처형 기록 실종의 의미
3. 處刑 前後의 부정적 기억들
4. 18세기, 긍정적 기억의 조짐들
5. 19세기, 긍정적 기억으로의 재구성
6. 역사적 평가의 현재성
7. 결론: 역사의 서사, 서사의 역사
동쪽 끝에서 교남(交南까지
: 17세기 일본 체류 조선인 趙完璧의 安南행[王?磊]
1. 조완벽 사건의 역사적 문헌, 流傳 배경 및 관련 연구
2. 조완벽이 바다를 건너 안남으로 간 경험 및 견문
3. 여론(餘論
삼번(三藩의 난을 둘러싼 일본과 조선의 정보 교섭
[陳波]
1. 對馬의 倭書
2. 조선의 풍문
3. 여론(餘論
청대 전기 강남 해외무역에서의 해상 선원 관리
: 일본 나가사키(長崎 唐通事 관련 문헌을 중심으로[王振忠]
1. 抄本 《浙江嘉興平湖縣給商船示約? 崎館海商條約》에 관하여
2. 중국 해상 선원의 생활 실태와 그들의 일상에 대한 관리
3. 해상 선원, ‘무뢰한’과 ‘倭患’: 머지않은 殷나라의 쓰라린 본보기와 江南 민중들의 고통의 기억
4. 결론
박지원의 《서이방익사(書李邦益事》에 나타난 臺灣?澎湖島?? 유람 고찰
출판사 서평
해양을 통한 양국의 교류
한중 양국은 전근대시기부터 바다를 사이 두고 많은 교류를 해 왔다. 특히 칭다오 지역 및 산둥반도는 한중 양국의 해양교류에서 반드시 거치게 되는 교통요로로 중추적이고 핵심적인 역할을 해 왔다. 한중 간 해양교류의 가장 이른 기록으로는 신라시기 산둥반도에 만들어진 신라방에 대한 기록과 일본 승려 예닌의 《입당구법순행례기(入唐求法巡行禮記》에 기록된 통일신라시기 장보고의 산둥반도 법화사 건설이 있다. 여말선초(麗末鮮初와 조선중기, 중국 대륙의 왕조교체(각각 원말명초, 명말청초에 해당함로 인한 혼란으로 ...
해양을 통한 양국의 교류
한중 양국은 전근대시기부터 바다를 사이 두고 많은 교류를 해 왔다. 특히 칭다오 지역 및 산둥반도는 한중 양국의 해양교류에서 반드시 거치게 되는 교통요로로 중추적이고 핵심적인 역할을 해 왔다. 한중 간 해양교류의 가장 이른 기록으로는 신라시기 산둥반도에 만들어진 신라방에 대한 기록과 일본 승려 예닌의 《입당구법순행례기(入唐求法巡行禮記》에 기록된 통일신라시기 장보고의 산둥반도 법화사 건설이 있다. 여말선초(麗末鮮初와 조선중기, 중국 대륙의 왕조교체(각각 원말명초, 명말청초에 해당함로 인한 혼란으로 육로사행이 불가능하게 되었을 때, 이루어진 해로사행(海路使行 《조천록(朝天?》에는 당시 해로사행의 주요 경로였던 산둥반도 여러 지역의 역사, 지리, 풍물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 남아 있다.
한중 간의 ‘해양교류’
그럼에도 지금까지 한중교류에 대한 연구에서 ‘해양’은 별로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으며 특히 사행 기록 연구 역시 육로사행인 《연행록(燕行?》에만 그 초점이 맞춰져 있는 실정이다. 중국학계의 경우는 중일 간의 해양교류에 대해서는 일정 정도의 연구업적을 쌓아 왔지만 한중 간의 해양교류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실정에서 출발하여 ‘해양’을 키워드로 한중, 나아가 동아시아의 문화교류를 살펴보고 있다.
이 책 전체의 내용이 ‘해양을 통한 교류’로 일관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