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꿈과 희망마저 앗아간 역사
1948년 10월, 아이들의 평화로운 일상에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어느 날 밤, 건우는 엄마 아빠가 계엄령이니, 반란이니, 빨갱이니 하는 이야기를 나누며 방바닥이 꺼져라 한숨 쉬는 소리를 들어요. 며칠 후에는 마을 큰길에 군인트럭이 오가고 골목 곳곳에 경찰과 군인들이 보초를 서기 시작합니다.
누나는 겁을 먹지만 건우는 안심해요. 군인과 경찰은 국민을 지켜주는 사람들이니까요.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기대와는 전혀 다른 일상이 펼쳐집니다. 총을 든 경찰과 군인 들은 몇 번이고 건우네 집에 쳐들어와서는 삼촌을 찾아내라며 으름장을 놓습니다. 계엄령으로 학교조차 문을 닫자, 건우는 겁이 난 나머지 마당에도 나가지 못해요.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누나네 음악 선생님과 마을 사람들이 죽도봉으로 끌려갑니다. 탕!탕!탕! 고막을 찢는 총소리가 울려 퍼지던 그날 이후, 모든 것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달라집니다.
처형장에 울려 퍼진 <울 밑에 선 봉선화>
이 책을 쓴 안오일 작가는 여순항쟁 때 희생된 故김생옥 선생님(1918-1948의 안타까운 사연을 모티프로 여순항쟁 이야기를 담아냈어요. 초등학생 건우의 시선으로 들려주는 그때 그곳의 이야기는 마을 사람 모두가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일 수밖에 없었던 역사의 상처를 고스란히 드러내 보이며 독자들의 마음을 두드립니다.
여순항쟁 당시 故김생옥 선생님은 순천여자중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는 촉망받는 성악가였어요. 선생님이 총살된 이유는 아무도 알 수 없었어요. 다만 선생님이 죽도봉 골짜기에 급조된 처형장에서 <울 밑에 선 봉선화>를 불렀고, 노래에 감동한 지휘관이 손을 들어 발사 중지 신호를 보냈으며, 그럼에도 병사가 방아쇠를 당겼다는 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어요.
서슬 퍼런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오랜 시간 묻혀 있던 이 이야기는 故박순이 여사와 며느리 유혜랑 박사, 그리고 어느새 80대가 된 제자들의 노력으로 세상에 드러날 수 있었습니다.
여순항쟁 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