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교의 기교, 순수하고 소박한 멋
한옥의 담은 우리 전통의 미적 감각과 향토적 서정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문화유산이다. 주변에 널린 손쉬운 재료로 아무렇게나 쌓은 듯해도 각자의 방식과 구성을 갖추고 있으며, 자연미와 전통미가 빼어나 고향의 푸근함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장인의 손길에 의한 것이 아니라, 마을 주민들이 직접 만들고 세대를 이어 덧붙여 온 것이라 의미가 깊다. 제주도에는 여전히 대를 이어 돌담 쌓는 일을 하는 ‘돌챙이’가 존재하는데, 그들이 선대로부터 배운 것은 돌을 보기 좋게 쌓는 요령이나 편법이 아니라 튼튼하게 쌓는 방법이었다. 이렇게 우리네 담장은 민화처럼 무기교가 지닌 기교를 고수하면서 순수하고 소박한 멋을 지켜 오고 있다. 차장섭이 담을 촬영하고 ‘한옥의 담’을 구상한 과정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그는 고택의 수문장 같았던 담장이 무너지며 집과 그 안에 살던 사람들까지 사라져 가는 현실을 깨닫고, 한옥의 원형과 그에 내재된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 전국의 고택들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그 특질이 잘 드러난 사진들을 마치 담을 쌓듯이 세심하게 골라내 잇고 쌓고 다졌다.
담은 집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보호하는 동시에, 집이라는 공간을 무한대로 확장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외부와의 경계를 통해 안락함을 제공하는 한편, 외부 풍경을 차경(借景이라는 이름으로 집 안으로 끌어들여 개방성을 부여하기도 하는 것이다. 또한 담은 쉽게 구할 수 있는 그 지역의 재료들, 자투리들을 활용해 만들어지며 내부 환경과 잘 어우러지기 위해 집을 짓는 공정 가운데 가장 마지막 순서를 이룬다. 그러나 한옥의 담을 건축물의 부속물이 아닌 독립적인 개체로 인식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아름다움을 재인식하면서 경남 고성의 학동마을, 충남 부여의 반교마을 등의 옛 담장이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획일적이고 폐쇄적인 공동주택에 거주하는 오늘날, 한옥의 담이 지녔던 자유분방한 표정과 상징성은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이 책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