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머리에
제1부
1974년
1975년
1976년
별지 자료
제2부 ‘T·K생’, 그리고 지명관 선생님을 생각하며
‘글 쓰는 사람’ 지명관 선생님(오카모토 아쓰시
지명관 선생님이 일본 교회에 남기신 것(오카다 히토시
「T·K생」과 지낸 6년 반(야마구치 마리코
존경하는 동료이자 자비로운 친구 지명관 교수를 기억하며(데이비드 H. 새터화이트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재고-한·일관계 정상화를 위해 실천하신 지명관 선생님(박일
그때도 오늘(고길미
생생하게 살아 있는 역사교과서-지명관 선생님, 강정숙 사모님 이야기(심재현
「한국으로부터의 통신」 연구를 통해 만난 지명관 선생님(서영혜
‘동아시아인 지명관’(서정완
지명관 선생님 저서 목록
『지명관일기』와 ‘TㆍK생’
이번에 간행한 제1권은 1974년 11월 1일부터 1976년 12월 29일까지를 수록하는데, 1974년은 박정희 대통령 저격사건 즉 문세광사건이 발발한 해이다. 일기를 쓰기 시작한 첫날에 “사건이 일어나 이것이 압수된다면 많은 동지들이 무서운 운명을 당할 것이 아닌가”라는 걱정을 담고 있는데,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할 것이다. 그만큼 조심스럽고 은밀하게 보관해야 했는데, 실제로 A4 사이즈 루즈리프에 만년필로 쓴 일기는 모두 4등분으로 접은 흔적이 남아 있다. 작게 접어서 은밀히 숨겨놓은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지명관일기』는 일본에서 지인 등에 여러 갈래로 분산해서 맡겨놓았다가 일본학연구소에 계시는 동안 하나씩 회수하신 것으로 알며, 연구소를 떠나실 때 연구소에 자료로 써달라고 기증하신 것이다. 참고로 「한국으로부터의 통신」 원고는 하나 탈고하면 길거리에서 접선한 야마구치 마리코 씨에게 건넸으며, 『세카이』 편집부에서는 당시 야스에 료스케 편집부장, 오카다 아쓰시, 야마구치 마리코 씨가 은밀하게 내용을 다른 원고에 옮겨 적고 원본은 불태워 없앴다고 한다. 필적을 남기지 않고 지명관 선생님 특유의 표현이나 표기를 은폐해서 KCIA가 혈안이 되어 ‘TㆍK생’ 찾기를 하는 긴박한 상황에서 지명관 선생님을 지키기 위한 방법이었다. 이 작업을 처음에는 야스에 료스케 편집장이 혼자 담당하다가, 야마구치 마리코 씨가 『세카이』 편집부에 들어온 후 퇴사할 때까지 6년 반 동안 이 은밀한 작업이 진행되었고, 야마구치 씨가 퇴사한 후에는 이 일을 함께 할 후임자는 없었다고 한다. 이 모두가 ‘TㆍK생’을 지키기 위한 민주화운동의 한 부분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에 비하면 『지명관일기』는 친필 원고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이 후학으로서 참으로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지명관의 정신과 지혜, 미소와 사랑을 오롯이 담다
일본으로 망명했던 지명관 선생님은 한국 국민이 위대하고 용감한 노력으로 민주주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