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말: 탐라의 고단했던 역사
탐라의 섬_해상 강국이었던 독립 왕국
해금과 유배의 섬_무려 200여 년간 출륙을 금하였지요
표류의 섬_조선 시대에 베트남을 다녀온 사람도 있지요
신들의 섬_1만 8천의 신들이 모여 살지요
궨당과 삼춘의 섬_만나는 사람마다 궨당이고 삼춘이지요
고팡과 정낭의 섬_한집에 같이 살아도 밥은 따로 해 먹지요
여다의 섬_세계 최고의 물질을 자랑하는 여성들
돌챙이의 섬_화산석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돌챙이의 손
테우리의 섬_알프스에는 하이디, 한라산에는 테우리
귤의 섬_원한의 과일에서 황금의 과일로
돼지고기의 섬_태평양 섬에서는 모두 돼지고기를 즐기지요
책 속에서
탐라의 섬
제주는 원래 고구려ㆍ백제ㆍ신라 같은 삼국과 달랐으며, 엄연히 ‘탐라’라는 독립 왕국이었지 요. 탐라의 호칭은 문헌에 따라 달랐습니다. 섭라, 탐모라, 담라, 탁라 등으로 불렸는데 그 중에서도 역시 탐라로 오랫동안 불렸습니다. 탐라는 고대 사회의 해상 강국이었습니다.
해금과 유배의 섬
제주도가 유배지로 가장 크게 주목받은 때는 조선 시대입니다. 당시 제주는 출륙 금지령이 내려진 ‘감옥’인지라 유배지로 각광을 받았던 것입니다. 제주에서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조 건이란, 거꾸로 유배인을 가둬 두기에 좋은 장치이기도 했지요. 해금(바다로 나가는 것을 금함과 유배는 다른 상황이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였습니다. 제주는 최고의 중죄인들을 보내는 유배지로 변해 갔습니다.
표류의 섬
추자도와 제주도 사이에 있는 바다에 강풍이 불면 자주 표류가 벌어졌습니다. 남해안은 좁 은 물목(물이 흘러 들어오거나 나가는 길목이지만 조선 시대의 풍선(바람으로 움직이는 배 으로는 위험한 항해였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늘 두려움을 갖고 모든 가능성에 대비하면서 항해했습니다.
궨당과 삼춘의 섬
제주에서는 아무나 삼춘이라고 부릅니다. ‘삼촌’이 아니라 ‘삼춘’입니다. 육지의 삼촌과 제 주의 삼춘은 다르지요. 모르는 이를 만나도 선뜻 삼춘이라 부릅니다. 음식점, 과일 가게, 버스, 극장, 학교에서 토박이들은 서로를 그저 삼춘이라 호칭합니다. “삼춘, 여기 물 한 잔 더 주세요! ”, “삼춘, 이거 얼마예요?” 곳곳에서 이런 소리를 듣습니다.
해녀의 섬
오늘날 해녀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노령화도 큰 이유겠지만 물질이 힘들기 때문에 젊은 층 이 뛰어들려고 하지 않습니다. (중략 ‘해녀 한 사람 사라지면 박물관 하나가 사라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해녀는 오랜 전통을 전수하면서 바다 생태를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생활 현 장의 장인들이기 때문입니다. 해녀의 전통을 잘 살려 나감은 앞으로 우리 시대의 중요한 과제입니다.
귤의 섬
제주는 한반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