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4
|제1장| 교도소에서의 목숨 건 투쟁 13
남원 포로수용소 14
대구교도소에서의 생활 실태 22
김천소년교도소에서의 생활 실태 27
안동교도소 생활의 실태 32
대전교도소의 실태 36
광주교도소에서의 잔혹한 전향 공작 42
청주보안감호소 비전향말살책은 어떻게 자행했는가 48
적들의 환경을 어떻게 활용했는가 57
사상적 단결을 위한 투쟁 63
대열 보존을 위한 투쟁 71
아버지 76
비전향말살책에 희생된 동지들 83
교도소 투쟁에서 살아 있는 가족 친지들과의 연계 92
건강을 위한 투쟁 98
|제2장| 비전향자의 출옥 후 투쟁 103
비전향 장기수 출옥 환영대회 104
그물망처럼 묶어놓고 있는 보안관찰법 109
출옥 후 직장은 몇 번이나 옮겨 다녔는가 113
2020년 미군 철수 원년 선포식 119
미 대사관 앞에서 1인 시위 121
세기의 악법인 국가보안법 폐지 1인 시위 123
불능 처리된 비전향 장기수들 진상조사 재청구서 126
범민련이 걸어온 30년은 조국통일의 횃불이었다 134
미제는 대북 적대정책 폐기하고 평화협정 체결하라 137
비전향 장기수 제2차 송환촉구 기자회견 140
비전향 장기수 묘소 훼손에 대하여 143
신념의 고향인 평양 한 번도 못 갔다 146
|제3장| 빨치산 전적지 탐사 149
지리산 함박골 박영발 비트의 참상 150
빨치산 전적지 답사 남도부 부대 발자취 따라 160
빨치산 투쟁의 전적지인 용추계곡과 돌고개 164
우중 속 지리산 뱀사골 기행 168
피어린 대둔산 173
눈 덮인 지리산 바래봉 176
지리산 종주를 하는 사람들에게 180
4.3은 통일이다 194
6개 도당위원장 회의트 199
마지막이 될 백운산 기행 203
전쟁 전후 경남 산청군 학살지 207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실태 211
|제4장| 빨치산 영웅을 추억하며 215
불굴의 혁명 투사인 이현상 선생 70주기 216
불굴의 혁명열사 충남도당위원장 박우헌 동지 223
조
전쟁은 끝났지만, 빨치산의 전쟁은 계속되었다
이 책을 편집하면서 내내 우리 아버지를 생각했다. 우리 아버지는 1930년 생으로 이 책의 저자보다 5살이 많으시다.
아버지는 한국전쟁 당시 국군으로 참전했다. 아버지가 반공주의자여서 국군이 된 것도 아니다. 전쟁이 나고 어쩌다 국군이 되어 인민군과 싸우게 되었다. 그 전쟁 속에서 아버지는 중국군이 쏜 총에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아버지도 이 책의 저자처럼 소작농이었다. 전쟁이 발발하면서 20살의 아버지는 자연스럽게 징집이 되었다. 어쩌면 아버지는 왜 인민군과 싸워야 하는지도 모른 채 싸웠을 것이다. 당시 이 땅의 수많은 젊은이가 영문도 모른 채 전쟁에 동원되었다. 그리고 각자 열심히 싸웠다. 국군도 인민군도 열심히 싸웠다. 그 중에 일부는 전쟁 중에 전사했고, 일부는 살아남았다.
김대중 정부 이후 아버지는 6.25 참전유공자가 되어 적은 금액이지만 30여만 원의 참전 수당을 받고 있다.
북한에서도 비슷하리라 생각한다. 북한식 표현에 의하면 ‘위대한 조국해방전쟁’에 참전해서 희생되거나 생존해 있는 인민군들도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남쪽에서 빨갱이로 몰려 토벌에 대상이 되어 죽음을 맞이하거나 살아서 포로가 되어 30여 년 이상 감옥 생활을 해야 했던 빨치산들의 고귀한 희생은 어디에서도 보듬어주지 못했다.
한국전쟁의 정전과 함께 빨치산은 북으로 안전하게 돌려보내 줬어야 했다. 하지만 한국전쟁이 끝나고 1년 뒤까지도 지리산, 백운산 등지에서의 빨치산 투쟁은 계속되었다. 이 책의 저자 김영승이 체포된 것도 휴전 이후인 1954년 2월이었다. 전쟁은 끝났지만, 빨치산의 전쟁은 계속되었다. 휴전 이후 빨치산 투쟁은 패배가 예정된 싸움이었다.
휴전협정에서 빨치산들의 처리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북쪽의 책임도 크다고 본다. 휴전협정은 1년 이상 끌었는데 남쪽에 고립되어 외롭게 싸우고 있는 빨치산들의 안전한 퇴로를 반드시 끌어냈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