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이름을 붙여 주세요
옛날 옛날, 조그만 오리 한 마리가 있었다. 너무나 못생긴 탓에 무리에게 따돌림을 받고 급기야 쫓겨나는 신세가 된 오리. 그러나 결국은 엄청난 고생 끝에 무척이나 아름다운 어른 백조가 되었다는 이야기. 안데르센의 〈미운 아기 오리〉는 타고난 결함을 이기고 눈부신 존재로 거듭난 오리의 성공담으로 읽히기도 하고, 수많은 멸시와 핍박을 받은 끝에 본래 자기 자신을 되찾아 행복해진다는 운명론으로 읽히기도 하지만, 이 이야기의 주된 독자인 어린이들이라면 대개 이런 독후감을 남길 것이다. “우리 엄마도 나만 미워해. 어쩌면 다른 데 진짜 엄마가 있을지 몰라.”
엄마아빠들은 극구 아니라고 부인하겠지만 부모의 편애란 아이가 겪는 최초의 차별이다. 그러니 어찌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있겠는가. 똑같은 형제들인데도 누구는 예쁨을 받고 누구는 무시를 당한다면, 그건 당연히 부당하다. 그러니까 〈우리는요?〉에 등장하는 못난이 오리 여섯 형제가 꽥꽥거리며 항의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오리 형제들의 어머니인 꽥꽥 부인의 행동거지라니. 꽥꽥 부인은 못생긴 아이들이 태어나자 대놓고 실망하는가 하면 유일하게 예쁜 아기 막내에게만 마르텡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못난이 여섯 형제가 “우리는요? 우리는요?” 하고 꽥꽥거려 봐도 이름을 붙여 주기는커녕 “시끄러워! 엄마가 마르텡이랑 얘기하고 있잖니.” 호통을 칠뿐이다.
그런데 사실을 말하자면, 편애란 예쁨을 받는 당사자에게도 불편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마르텡은 엄마가 자기만 데리고 연못으로 가는 것이 불편하다. 막내인 마르텡은 엄마가 친히 일 대 일 교습에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헤엄도 잘 못 치고 먹이도 잘 못 잡고 하늘을 날 수도 없다. 그러니 엄마의 관심 없이도 헤엄이면 헤엄, 사냥이면 사냥, 비행이면 비행, 뭐든지 척척 해내는 여섯 형들에게 놀림을 받을 수밖에. “마르텡 바보! 마르텡 멍청!” 형들은 엄마의 등에 올라 하늘을 나는 마르텡을 따라가며 놀려 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마르텡’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