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습 내면의 자화상 『금오신화』
『금오신화』는 김시습이 창작한 단편소설집으로, 이 책에 실린 다섯 편의 단편소설(「만복사저포기」,「이생규장전」, 「취유부벽정기」, 「남염부주지」, 「용궁부연록」은 교과서에도 수록된 아주 유명한 작품 들이다. 이 작품들을 쓴 시기는 김시습의 나이 29세에서 37세 사이로, ‘금오산 시절’이라 불리는 9년 간의 시기인데, 역자 박희병은 그의 다른 책(『김시습, 불교를 말하다』, 돌베개, 2024에서 『금오신화』를 쓴 시기를 1467년, 즉 김시습이 서른세살 때 썼을 거라고 보고 있다. 8년의 방황을 마치고 경주 금오산 용장사에 정착한 김시습은 그의 사상적 방황의 결과물로 유불도에 대한 기본 입장을 정리한 글을 집필했다. 불교에 관한 관점을 정리한 『청한잡저(淸寒雜著 2』, 도교의 여러 담론과 미신적인 측 면을 비판한 『청한잡저 1』이 모두 이 시기에 집필된 글들이다. 즉, 김시습은 중의 모습을 하고 있지 만, 완전히 불교에 귀의하지 않았고, 늘 유불도를 넘나들며 경계에 서 있었다. 퇴계 이황은 이런 김시 습을 색은행괴(索隱行怪에 가깝다고 하여 부정적으로 보았다. ‘색은행괴’는 『중용』에 나오는 말로 궁 벽한 것을 캐내고 괴상한 일을 하는 것을 뜻한다. 이에 반해 율곡 이이는 ‘심유적불’(心儒跡佛이며, 김시습의 절의는 ‘백세(百世의 스승’에 가깝다고 했다. ‘심유적불’은 마음(즉 사상은 유학인데 겉으로 행동하기를 불자처럼 했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기에 창작한 『금오신화』도 심상하게 볼 작품은 아니며, 많은 사람이 이 책을 읽으며 김시습의 사상과 작품의 의미를 연관 짓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의 작품들이 모두 그의 사상을 전달하기 위해 쓰였다고 볼 수는 없다. 김시습이 정립한 유불도에 대한 기본 입장과 배치되는 내용이 『금오신화』의 작품들에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금오신화』를 읽을 때는 김시습의 사상적 배경을 고려하는 것도 필요할 테지만, 그보다 먼저 작품 자체로 볼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