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서
1월 3일 생일이 되면 어머니를 떠올린다.
일본으로부터 해방되던 해 8월
어머니의 뱃속에서 커 가고 있었던 나.
해를 넘기고 세상에 나왔지만
늘 해방동이로 자처한다.
연말연시의 들뜸과 희망에 편승하여.
생일에 늘 많은 것을 받아 왔다.
1998년 1월은
우리나라가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한 직후의
암울한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신년 기념 및 생일 축하를 위해
가족들과 한겨울의 북한산에 올라왔다.
p. 15
3월이 다 가고
아침의 햇빛이 이토록 강한데
고목의 가지들은 아직 싹을 숨기고 있다.
공원 입구에는 60대로 보이는 젊은 노인이
시청에서 제공한 듯한 조끼를 걸치고
낙엽 나부랭이들을 빗자루로 쓸어 마대에 담고 있다.
시대가 바뀌어
노인의 정의가 바뀌었는데
저 고목도 아직 고목이 아닌데.
p. 191
제주도 서남쪽
청수리 마을에 반딧불이 축제가 열렸다.
휴대폰 빛까지 차단하라는 지시를
어린아이들까지 모두 착실하게 따랐다.
오솔길 양측으로 수를 셀 수 없는 반딧불이가
깜박깜박 점멸하면서
슬로우 왈츠(slow waltz를 추고 있었고
칠흑 같은 밤하늘에는
북두칠성이 낮게 깔려 있었다.
p. 3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