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보는 파성 설창수3
책을 내면서9
한국 근대 지역문학의 발견과 파성 설창수 15
[박태일]
파성 설창수의 전인문학관 고찰 49
[유경아]
문예지
<영문(嶺文>
연구 73
[문옥영]
설창수의 문학살이와 진주(晋州 151
[한정호]
파성 설창수의 광복기 희곡 연구 181
[김봉희]
근대 진주 지역문학의 전통과
<삼인집(三人集>
215
[이순욱]
<영문(嶺文>
소재 김춘수 미발굴 시 연구 247
[문옥영]
[붙임 1]
<영문(嶺文>
1집∼18집 목록 271
[붙임 2] 설창수 해적이 321
영문(嶺文>
영문(嶺文>
삼인집(三人集>
영문(嶺文>
설창수 문학을 조망한 지역문학 연구서 발간
지역사랑과 문학실천의 마음으로 꾸준하게 연구하고 지역문학 총서를 펴내고 있는 연구자 6인이 설창수 문학의 연구서를 펴내 눈길을 끈다.
파성 설창수(1916-1998는 광복 이후 경남 진주에 터를 두고 경남·부산 지역문학과 우리 근대문학 전개에 독특한 풍모를 일궈 낸 문학인이다. 그는 지역문학의 핵심 주창자였고, 열혈 언론인이었으며, 강직한 예술문화 실천가였다.
하지만 그의 이채로운 삶은 역사의 수혜자면서도 아울러 피해자라는 이중적 면모에 가려져 있었다. 그 결정적인 매듭이 1960년 경자시민의거(4월혁명와 그 뒤에 있었던 군부쿠데타였다. 쿠데타 세력에 의해 반민주행위자로 몰려 1962년부터 공민권 제한을 받았던 것이다. 공을 들여 다듬어왔던 영남문학회와 문예지
<영문>
을 해체 당했고, 그는 언론사에서 쫓겨났다.
광복기부터 그가 지역 예술문화 주창자로서 활동하고 누렸던 기간은 16년으로 짧았으나, 피해자로서 겪었던 나머지 삶은 그 배를 넘게 긴 36년에 걸쳤다. 한참 일할 시절부터 주류 권력층과 날카롭게 각을 세우며 살 수밖에 없었던 걸음은 그를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적지 않게 왜곡시켰다. 그로 말미암아 피해 의식과 울분, 포기할 수 없는 대의를 파성은 자신만이 지닌 결기로 풀어나가며 버거운 시대를 뒹굴다 갔다.
<파성 설창수 문학의 이해>
이란 제목을 달고나온 연구서는 설창수 문학 연구를 향한 첫 걸음으로써 의미가 크다.
이 책에 실린 박태일의 글은 설창수 문학에 대한 학계 첫 보고물이었다. 비록 광복기 활동에 초점을 둔 것이지만, 실천 활동과 이론 활동으로 나누어 그 성과와 의의를 살폈다. 유경아는 설창수의 문학관을 처음으로 온전하게 짚고자 했다. ‘전인문학’이라는 독특한 문학관은 그의 평생을 꿰뚫는 지표였다. 김봉희는 설창수의 초기 희곡문학을 간추리고 풀이했다. 시인으로만 알려진 파성 문학에 대한 재구성뿐 아니라 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