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프롤로그
제1부 마자르인
제1장 아퀸쿰
제2장 마자르인
제3장 몽골족의 침공
제4장 까마귀왕
제5장 제국의 역습
제6장 부둔, 튀르크인의 도시
제7장 전리품 분배
제8장 부다 탈환
제2부 합스부르크 왕가
제9장 바로크, 우울과 영광
제10장 언어, 진실, 논리
제11장 교량 건설자
제12장 대홍수
제13장 3월 15일
제14장 혁명 전쟁
제15장 복수극
제16장 유다페스트
제17장 시시 황후
제18장 이중 군주국, 패배 속의 승리
제19장 부다페스트의 탄생
제20장 카페 문화
제21장 헝가리의 유대인 집단 학살
제22장 비자유 민주주의
제23장 자국의 정당성
제3부 세계대전
제24장 종말의 시작
제25장 레닌의 제자
제26장 해군 없는 제독
제27장 히틀러와 함께 행진을
제28장 드러난 광기
제29장 부다페스트 포위전
제30장 해방
제31장 철의 장막
제32장 공포의 집
제33장 또다시, 혁명
제34장 진압된 혁명
제35장 군영에서 가장 즐거운 막사
제36장 마지막 의식
결론
주
참고 문헌
감사의 말
화보 출처
인명 색인
로마 시대의 아퀸쿰에서부터 소비에트 연방의 난민 휴가지가 되기까지,
혁명과 봉기, 점령과 지배의 부다페스트 2,000년
부다페스트는 다양한 세력의 침공과 혁명, 봉기로 부침을 거듭했다. 고대 로마와 마자르인, 몽골, 튀르크가 이곳을 차례로 점령했고, 그때마다 아퀸쿰(고대 로마 시기, 부다(마자르인 정착기, 부둔(튀르크인 점령기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오늘날 헝가리인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마자르인은 침략을 겪을 때마다 유럽의 여러 국가들에 도움을 청했으나, 번번이 혼자서 외세를 감당해야 했다. 유럽에 속하지만 공격을 받을 때마다 외면받아온 역사는 헝가리의 정체성을 “동양과 서양” 사이로 위치시켰다.
17세기 이후 부다페스트를 차지한 것은 합스부르크 가문이었다. 합스부르크 가문은 그전까지 부다를 점령하고 있던 튀르크인들을 몰아내고 제1차 세계대전 때까지 이곳을 통치했다. 이 시기에 헝가리는 합스부르크 가문과 긴밀하게 관계를 맺은 헝가리 귀족과 나머지 계층의 빈부격차가 커지고 비(非마자르인에 대한 차별이 극심해지는 등 사회 갈등이 심화되었지만, 부다와 페스트를 연결하는 다리를 건설하고 헝가리어 부흥 운동을 일으키는 등 독립된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뚜렷이 하기도 했다. 마자르인의 정체성을 강조하며 이루어진 자치권 요구는 1848년 혁명과 독립 전쟁으로 이어졌으나, 비마자르인을 고려하지 못했다는 한계와 합스부르크의 반격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합스부르크 가문의 영향력이 쇠하자, 헝가리는 나치 독일과 운명을 함께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헝가리를 통치한 호르티 미클로시 제독은 히틀러의 충직한 부하로서 수많은 유대인을 학살했고, 무장 폭력배들을 동원해 백색 공포정치를 자행했다. 전쟁 말기에 그는 패전을 예감하고 뒤늦게 히틀러와의 결별을 선언했지만, 이는 나치에 의한 부다페스트 포위전(마르가레테 작전으로 이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헝가리는 소비에트 연방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공산국가가 되었다. 헝가리에 공산당을 조직한 라코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