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간, 세대 간, 가족 간의 오해와 갈등으로 빚어진 두껍고 기다란 철조망
승찬이는 늘 형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어요. 우리 집에서 잠깐 지내러 온 먼 친척 명식이 형은 든든하지도 미덥지도 않습니다. 우리 방을 나눠 쓰는 것도, 내가 좋아하는 계란찜을 마구 퍼먹는 것도 맘에 들지 않아요. 말할 때마다 킁킁대며 더듬거리는 것도 짜증 나고요. 형이 데려온 강아지 뭉치마저 승찬이를 졸졸 따라다니며 성가시게 합니다.
그런데 아랫마을에 사는 승찬이가 아파트촌으로 가는 개구멍을 넘나들다가 아파트 주민들의 치사한 텃세에 부딪힌 날, 비로소 깨닫습니다. 대놓고 차별하지 않아도 은근히 무시하는 태도가 형과 뭉치에게 어떤 기분을 느끼게 했을지 말이죠.
뒤이어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한 채 꽉 막힌 소통으로 갈등을 키워 가는 여러 인물의 관계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펼쳐집니다. 선천성 면역 결핍으로 태어난 탓에 늘 엄마의 간섭을 받으며 변변히 친구도 사귀지 못한 유민이는 자신을 언제까지고 어린애 취급하는 엄마에게 화가 납니다. 유민이 엄마는 자꾸만 자기 품을 벗어나려 드는 유민이를 걱정하던 차에, 자꾸 아파트 공터에 올라와 놀면서 유민이를 괴롭히는 듯한 승찬이를 눈엣가시처럼 여기게 되고요. 그런가 하면 같은 동에 사는 보성댁 할머니는 서울 아파트살이를 갑갑해하던 차에 아랫마을에 내려가 텃밭을 가꾸면서 숨통을 트는데, 유민 엄마 때문에 개구멍이 막히면서 대립합니다.
이처럼 동화 《개구멍을 뚫어라》에는 마치 이 사회의 축소판처럼 다양한 갈등이 등장합니다. 아파트촌과 이웃 마을 사이의 지역 갈등, 각자의 삶의 방식을 인정하지 못하는 세대 간과 가족 간의 갈등, 그리고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 동물과 인간 사이의 오해와 불통까지 말이지요. 이 모든 갈등과 사건은 아랫마을에 사는 승찬이의 시선, 아파트에 사는 유민이의 시선, 그리고 가출한 강아지 뭉치의 시선을 통해 독자들에게 제시됩니다. 각자의 처지에서 같은 사건을 바라보고 서술할 때 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