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 나는 걸어요.
작게 속삭이는 민들레와
솔잎을 바르르 떠는 소나무가 있는
이 길을 천천히 천천히 걸어요.”
고소한 미숫가루 한 잔 같은 할머니와의 달큼한 추억
학교도 쉬고, 엄마 아빠도 바쁜 어느 날, 아이는 일찌감치 할머니 집에 맡겨졌어요. 무엇을 해도 혼내지 않고 귀여워해 주는 할머니 집에 가는 것은 늘 기분 좋은 일이에요. 그러나 그런 할머니가 반가운 것도 잠시, 할머니 집에는 컴퓨터도 없고, 게임기도 없으니 금세 심심하고 지루했어요. 할머니와 함께 사는 강아지 보리가 있어도 마찬가지였어요. 할머니는 소파에 누워서 텔레비전만 보고, 보리도 할머니 발치에 누워 잠만 잤으니까요.
그런데 역시 할머니는 할머니일까요? 할머니가 심심해하는 사랑스러운 손녀를 위해 무거운 몸을 일으켜, 꿀맛 같은 미숫가루를 만들어 주기로 한 거예요. 할머니는 찬장에서 미숫가루와 토종꿀 한 병을 꺼내 느릿느릿 미숫가루를 타기 시작했어요. 아이는 목도 타고, 애도 탔어요. 할머니의 미숫가루 타는 솜씨는 세상에서 제일이지만, 아주 맛있는 만큼 만드는 속도도 아주 오래 걸리거든요. 할머니의 치마 끝에 매달려 침을 꼴깍꼴깍 삼키기를 얼마 후, 드디어 맛있는 미숫가루 한 잔이 완성되었어요. 그리고 한 모금 꿀꺽 마시는데, 그 맛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어요. 정말 구름 위에 앉은 것처럼 기분이 둥실둥실 좋아졌지요.
느리지만 정확한 걸음으로 걷다 보면 만나게 되는 풍경이 있어요
그런데 미숫가루를 단숨에 다 마셔 버리고 나니, 또 심심해졌어요. 보리 귀도 잡아당겨 보고, 만화 영화도 보고, 굴러다니기도 하고, 그림책을 봐도, 그래도 심심했어요. 그때 할머니가 말했어요. “심심하면 놀이터 갈까?”
할머니는 미숫가루를 타 줄 때처럼 또 느릿느릿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어요. 느릿느릿 팔을 올려 겉옷에 팔을 끼우고, 걷기 편한 바지를 조심조심 올려 입는데, 그 모습이 너무 느려 마치 춤추는 것만 같아요. 이것저것 챙길 것은 어찌나 많은지 몰라요. 보리 간식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