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샤를 보들레르
독실하고 예술적인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명문 고등학교에서 퇴학당하고 무절제하고 방탕하게 생활하자 가족들로부터 배척당한다. 당시에 대도시(파리의 삶은 새롭게 등장한 라이프스타일이었고, 보들레르는 섬세하고 예민한 시인의 감성으로 그곳의 가난하고 불안한 삶에서 《악의 꽃》을 피워냈다. 하지만 당시로서는 너무나 파격적인 내용에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대중에게는 문제아로 여겨졌고, 예술가들에게는 뮤즈로 추앙받았다.
그림 : 앙리 마티스
법률사무소에서 일하던 스무 살 무렵 급성 맹장염으로 누워 있다가 소일거리 삼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가 화가로 나섰다. 자신만의 그림 스타일을 찾기 시작한 1904년에 보들레르의 시 ‘여행으로의 초대’에 나오는 시구 <풍요, 고요, 쾌감>을 그렸다. 이후 1944년, 암 투병 중이던 75세에는 마티스의 시집 《악의 꽃》 삽화판을 냈다. 그림이 곧 자신의 삶이라는 듯, 붓을 쥘 수 없으면 연필을 쥐고, 연필을 쥐기도 힘들면 가위로 오려 붙이면서, 죽는 날까지 쉼 없이 그림을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