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서문
프롤로그
문인화가 강세황
선행 연구에 대한 연구사적 검토
연구 방법 및 구성
제1장 가문의 정치적 시련과 회화를 통한 연대
1. 강세황의 가계와 가문 의식
2. 무신란의 상흔과 치유를 위한 회화
3. 안산 이주와 회화를 통한 연대
제2장 문인화가를 향한 사회적 요구와 그 대응
1. 진주 유씨를 위한 서화 수응과 예술 취미의 공유
2. 남인 문사를 위한 서화 수응과 사회적 활동의 확장
3. 소론 관료를 위한 서화 수응과 그 정치적 성격
4. 대중적 수응화로서 묵죽화 제작
5. 사회적 의무로서의 서화 수응
제3장 사대부-관료로서의 문인화가
1. 가문의 복권과 절필의 시련
2. 출사와 절필의 종료
3. 관료-문인화가로서의 활약
4. 조선 조정의 문인화가
제4장 자아의 탐색과 자기 인식의 형상화
1. 강세황의 자화상 제작의 이력과 동인
2. <70세 자화상>과 자기 인식
3. <71세 초상화>와 관료로서의 자기 인식
4. 문인의 자아 표출과 초상화
제5장 강세황의 서화와 18세기 문화의 만남
1. 청완 문화의 향유와 회화적 대응
2. 실경산수화와 문인화의 새로운 모색
3. 서화 비평과 풍속화에 대한 글쓰기
에필로그
부록
참고문헌
도판 출처
찾아보기
“이 사람은 누구인가? 수염과 눈썹이 희다.
머리에는 관리의 모자를 쓰고 몸에는 야인의 옷을 입었네.
마음은 산수에 있지만 이름은 조정에 오른 것을 볼 수 있네.
가슴에는 만 권의 서적을 간직하였고 붓은 천지를 흔드네.
세상 사람이 어찌 알겠는가? 나 혼자서 낙으로 삼는다.
옹의 나이는 70, 호는 노죽이다.
그의 초상은 그가 그린 것이며 찬도 자기가 지은 것이다.“
- 강세황이 자화상에 적은 자찬문 中
조선의 자화상에 관한 본격적인 탐색
뒤러, 렘브란트, 반 고흐, 앤디 워홀에 이르기까지 위대한 화가들은 자신의 모습을 미술의 대상으로 삼았다. 사진이 없던 시대를 살았더라도 우리는 자화상을 통해서 화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자화상의 모습은 완전한 사실이 아닐 수 있다. 자화상 속의 화가는 자주 다중적이고 때때로 역설적이다. 자화상은 객관적인 모습을 그리는 초상화와 다른 장르의 그림이다. 자화상이 그리는 것은 그림을 그리는 그 순간 화가는 누구인가, 그는 어떻게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이다. 화가의 현존을 그린 자화상은 매우 사적이면서 보편적인 그림이다.
동양 미술의 역사에서 화가의 자화상은 드물게 나타난다. 우리 미술사에서 자화상을 남긴 화가는 윤두서와 강세황이 있을 뿐이다. 이처럼 자화상의 수는 극도로 적지만 모두 빼놓을 수 없는 한국미술사의 명작이다. 강세황은 야인의 도포에 관료의 사모를 착용한 모습으로 자신을 그렸다. 그의 자화상에 보이는 유래 없는 독창적인 형식이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 책은 『표암 강세황-붓을 꺾인 문인화가의 자화상』은 강세황의 자화상과 여기에 담긴 화가의 내면의식을 심층적으로 다룬 다년간에 걸친 탐색의 결과물이다.
시, 서, 화에 모두 뛰어난 조선을 대표하는 문인화가
강세황은 대중적으로는 천재화가 김홍도의 스승 정도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일찍이 미술사학자인 고 이동주가 ‘예원의 총수’라는 별칭을 붙여주었을 정도로 학계에서는 스타 화가의 위상을 지녔다. 생전에 강세황은 시서화(詩書畵에 모두 뛰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