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가 목격한 그날의 기억
이백 살 넘은 느티나무가 있다. 마을 어귀를 지키는 우람한 아름드리나무지만, 수십 년 전 일로 상처를 입어 새잎도 변변히 돋워내지 못한 채 메말라 가고 있다. 그런 느티나무에게로 언제부터인가 중장년의 두 사내가 찾아와 말을 건네면서, 느티나무는 희미해진 기억 속 그날의 일이 차츰 떠오른다.
1980년 광주의 푸른 5월, 느티나무 아래서 만난 두 아이는 나라 지키는 군인들이 왜 학생을 잡아가는지 도무지 알 수 없어 불안하기만 하다. 그런 가운데서도 천진하게 뛰어노는 아이들에게 무시무시한 총소리와 함께 계엄군 트럭이 다가온다. 대장 군인은 이쪽으로 도망친 대학생의 행방을 대라며 윽박지르고 함부로 때린다. 심지어 대학생의 탈출을 도운 부하 군인을 벌주기 위해 아이들을 쏘라고 명령한다. 탕, 탕! 부하 군인의 총은 아이들 대신 느티나무를 향한다. 하지만 도망치던 아이 가운데 하나는 결국 대장 군인의 총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느티나무는 오랜 세월이 흘러 자신을 찾아온 두 사내가 누구였는지, 그날에 어떤 일을 목격했는지 비로소 생생하게 기억해 낸다. 다시는 그날의 일을 잊지 않으리라며, 느티나무는 회한에 사로잡힌 두 사람을 가만히 위로한다.
잊지 말아야 할 ‘기억’을 이야기하는 그림책
5.18을 왜곡하거나 희화화하는 글과 영상이 온라인상에 끊임없이 올라오고 젊은 세대의 민주화 운동에 대한 이해가 점점 흐릿해지고 있다. 과거의 어두운 일이라며 묻어두고 다음 세대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는다면 언제 또다시 국가폭력이 고개를 들고 시민을 억압할지 모를 일이다. 그날을 기억하고 증언하는 일이 끊임없이 반복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이 작품은 광주의 가장 어린 희생자 전재수 군이나 시민군을 도운 계엄군 등 이미 알려진 5.18 관련 인물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새롭게 재구성하여 만든 이야기다. 학살의 주범은 사과는커녕 밝혀진 사실조차 부인한 채 세상을 떠났고, 책임 있는 계엄군 지휘관들 가운데 속죄하며 나선 인물은 극히 드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