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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조선과 명청의 향촌사회 비교 연구 - 한국사연구총서 115
저자 장동표
출판사 국학자료원
출판일 2024-09-12
정가 29,000원
ISBN 979116797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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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조선시기 在地士族과 명청대 紳士에 대한 비교
1. 머리말 13
2. 조선시기와 명청대 향촌지배층의 용어 15
3. 조선시기 士族支配體制와 명청대 紳士制度 23
4. 조선시기 在地士族과 명청대 紳士의 향촌활동 30
5. 맺음말 38

제2장 조선시기와 명청대의 鄕約 시행과 그 성격 비교
1. 머리말 43
2. 양국의 향약 변천과 기능 45
1 향약 변천의 흐름 45
2 향약 기능의 변화 51

3. 양국의 향약 시행과 성격 55
1 명청대 향약 시행 55
2 조선시기 향약 시행 60
4. 맺음말 67

제3장 朝鮮과 明의 鄕賢 추숭과 鄕賢祠 건립 비교
1. 머리말 73
2. 조선조 鄕賢 追崇과 鄕賢祠 75
1 추숭 대상의 확대와 향현 선정 75
2 향현 추숭과 향현사 건립 사례 80
3. 명대 鄕賢 崇祀와 鄕賢祠 89
1 숭사 대상의 확대와 향현 선정 89
2 향현사 건립과 향현의 증가 95
4. 맺음말 101

제4장 朝鮮과 明의 淫祀와 城隍祭儀 인식과 대응 비교연구
1. 머리말 107
2. 양국의 祀典 정비와 淫祀 인식 109
1 명의 사전 정비와 淫祠 禁毁 109
2 조선의 사전 정비와 淫祀 제재 117
3. 양국의 城隍祭儀의 正祀 편입과 城隍廟 128
1 명의 성황묘와 성황신앙의 성격 128
2 조선의 성황묘와 성황제의의 淫祀化 134
4. 맺음말 145

부록 중국 북방 기행; 우리 고대 역사의 발자취를 찾아

Ⅰ. 조·중·러 삼국 변경지대를 둘러보고 190
Ⅱ. 해동성국 발해 역사의 현장을 찾아 195
Ⅲ. 북방 선비족의 발원지, 알선동으로 204
Ⅳ. 길림성의 부여 유적지 흔적들 214

참고문헌 223
조선에서 성황신앙과 성황묘는 주지하듯이 고려 때부터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것이다. 城隍神은 고려 말부터 명나라 홍무예제의 영향으로 풍운뇌우·산신과 합사되고 있었다. 성황사에서 지내는 제의는 조선 성종 대 국조오례의의 정식 의례 가운데 中祀로 편입되었다. 성황제는 정사 체제에 편입되었음에도, 실제에서는 많은 지역에서 淫祠로 분류되어 갔다. 성황사의 제의는 군현의 一廟三壇 제의 중 ?祭의 발고제가 되었는데, 정식으로 완전히 독자적인 제사가 되지 못하다가 그 위상이 점점 낮아지게 되었다. 조선에서 성황제의가 淫祀的 성황묘 제의로 성격이 점차 변화하였다. 함안의 경우 사직단의 신축과 각 방리까지의 확장과 반대로, 淫祀的로 사우로 취급되던 함안의 성황단은 사족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조선 후기에 이르면서 유교 지식인들의 성황묘에 대한 인식은 당시 사회의 풍속과 관련하여 훼음사의 태도를 기본적으로 가졌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고려 이래 밀양지역의 수호신으로 숭앙되어 온 손긍훈이 조선 후기에도 밀양 사회에서 성황신으로 계속 숭배를 받고 있었다. 손긍훈에 대한 관향은 중국에서 城隍祭儀가 官方化 되는 현상과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