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01 서양의 로마시대에, 동양의 발해 2천년 왕조 있었다
02 “발해의 모퉁이에 조선이 있다” 「산해경」에 고조선의 위치와 위상 담겨
03 발해만 부근 단군조선을역사로 기록한 「산해경」
04 자랑스러운 발해조선 역사, 감추고 왜곡하는 반도사학
05 밝달민족 산동, 요동, 한반도 누비며 천하경영
06 천년 전 북경 위의 조선하朝鮮河, 북경이 발해조선의 일부였다는 증거
07 북경 코앞 ‘조선하’ 심기 불편, 한 글자 슬쩍 빼 조하潮河로 변경
08 북경의 조선하, 「왕기공행정록」 「석진지」에도 나온다
09 황폐한 조선성朝鮮城, 왜 천년전 하북성 노룡현에 남아 있었나
10 1400년 만에 들통난 하북성 노룡현에 감춰진 조선성의 비밀
11 진시황 진나라 동쪽 끝은 산동반도, 북쪽은 고조선 땅
12 고조선 땅에 세워진 진시황 유적의 모순
13 하북성 노룡현엔 왜 조선성, 고죽성, 요서성 유적이 있었는가
14 발해조선 입증하는 모용선비족 두로공 신도비문
15 한양조선은 발해조선을 계승했는가
16 발해조선 없는 한국사가 동북공정 불렀다
17 평양의 단군 무덤 고조선 때 것일까
18 발해만의 하북성 노룡현 일대가 고조선 수도 ‘평양’
19 “조선 재상 북경 어양현 사람”, 사마천 「사기」 발해조선 입증
20 만리장성 연장 시도는 중국의 영토야욕이 빚어낸 저질 코미디
21 위환魏煥의 「황명구변고皇明九邊考」 선비족, 고죽국 등을 발해조선 민족으로 간주했다
22 「주역」의 ‘명이明夷’는 발해조선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23 아리랑, 장독대에도 남아 있는 발해조선의 건국이념 홍익인간 정신
24 비열한 수법 동원한 한무제의 발해조선 침략, 실패한 전쟁이었다
25 발해조선, 상나라, 고죽국이 숭배한 세발 달린 검은 새 삼족오三足烏
26 지금의 광활한 중국 만든 청나라, 발해조선의 후손이다
27 발해조선의 수도와 서쪽 경계는 어디일까
28 북경 넘어 하북성 남쪽 보정시 일대까지 고
중국 대륙 난하 중심의 리지린 민족사관
대동강 평양, 한반도 한사군 설을 배격하고 고조선의 강역을 압록강에서 하북성 동쪽 난하 유역으로 확장하는 대륙사관의 기치를 든 것은 북한의 리지린이다.
요동군과 요서군의 기준이 된 고대의 요수를 현재의 요녕성 요하가 아닌 하북성 동쪽의 난하로 보고 고조선과 중국의 국경선인 패수를 현재의 북한 청천강이 아닌 요녕성 대능하로 본 것이 리지린 민족사관의 핵심이다.
북한 리지린의 관점은 남한의 윤내현 등에 의해 계승되고 있다. 윤내현은 “고대의 요수는 지금의 요하가 아니다. 지금의 난하 유역이 고대의 요동이다. 고조선과 중국의 국경은 지금의 난하와 그 하류 동부유역에 있는 갈석산으로 이루어져 있었다.”고 말하였다.(『고조선 우리의 미래가 보인다』. 민음사, 1995
북한 리지린 민족사학의 한계
하북성 난하가 고대의 요수이고 난하가 중국과 고조선의 경계였다는 리지린의 주장은 고조선의 영토를 대륙으로 대폭 확장시켰다는 점에서 식민사학에 찌든 한국 반도사학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 주었다. 다만 리지린의 주장은 다음 몇가지 문제점이 지적된다.
첫째 하북성 동쪽의 난하를 고대의 요하로 보는 것은 어디까지나 리지린의 추정일 뿐 난하가 요하라고 직접 언급한 고대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하북성 남쪽 보정시保定市 역수易水는 역수의 다른 이름이 요수라고 남북조시대 대표적인 학자 유신庾信(513~681이 직접 언급했다는 점에서 고대의 요수는 지금의 난하가 아닌 역수라고 보는 것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다.
둘째 리지린이 난하를 고대의 요수로 비정하는데 주요한 근거로 작용한 것이 갈석산이다. 현재의 갈석산은 바로 난하 부근 하북성 동쪽 창려현에 있어 리지린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리지린은 『사기』 소진열전의 “연나라 남쪽에 갈석산과 안문산의 풍요로움이 있다(燕南有碣石雁門之饒”라는 기록을 간과했다.
전국시대 연나라는 하북성 쪽에 있었는데 현재 갈석산은 하북성 동쪽에 있다. 그렇다면 지금 하북성 동쪽 창려현에 있는 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