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간사 | 축사 | 학교상징
사진 연대기
알피니즘 교육 3개 과정 - 정규반/암벽반/동계반 (아침구보
한국등산학교 50년
1970~1989
등산학교를 만들다 | 1970년대: 50년 역사의 첫 걸음 | 1980년대: 재정의 어려움을 넘어서 | 등산학교를 통해 본 장비 변천사 | 여성을 위한 등산교육
1990~1999
1990년대: 동문들의 활발한 활동과 안정적인 등산학교 | 대한민국 산악안전 특수교육의 시작 | 한등 동창회 회보 〈산학〉 | 회상의 책 〈바윗길〉 - 공용현
2000~2009
2000년대: 등산교육의 시대 | 도봉산장 54년사 | 등산교육을 통한 남북교류 | 금강산 가봤어? - 김영미
2010~2019
2010년대: 갈등과 극복 | 하강 변천사 | 내부 갈등을 넘어서
2020~
2020년대: 코로나19 위기와 극복 | 코로나시대 전후의 한국등산학교 | 도봉산을 뜨겁게 달군 100회 정규반의 열기
학교 발전 간담회 - 지나간 50년, 다가올 50년
한국등산학교 사람들
역대 교장
초대 교장 권효섭 - 이규한
설립위원
등산학교를 만든 사람들 이야기
총동문회
한국등산학교 가족입니다
알피니즘 정신으로 되살리는 옛길 복원사업
한등50 알피니즘을 위하여 - 이연희
50주년 기념 불수사도북 종주
나의 등반 이력에 투영된 〈바윗길〉의 위상 - 권오환
최고의 전통, 지원조 문화 - 김은솔
재미등산학교 - 오석환
내 마음의 고향 - 윤재학
변화의 반세기, 미래로의 도전 - 서성식
나의 등산학교 34년 - 전영래
천왕봉 결혼식 - 조용준
봄날 동기들과 인수봉 오를 생각에 가슴 뛰어 - 추혜경
한국 알피니스트의 메카이자 요람 - 이은희
한국등산학교, 고맙습니다! - 박성민
성실, 인내, 안전 그리고 사랑 - 구윤모
연혁 | 운영 규정 | 역대 강사 | 졸업생 명단 | 한국등산학교를 지원해주신 고마운 분들
한국등산학교는 등산에 대한 체계적 개념이 없던 1970년대 초반 설립되었다. 1974년 학원(사설강습소으로 등록하기 위해 교육구청에 문의하자, “냄비 가지고 가서 밥 지어 먹고 오는 등산에도 교육이나 학교가 필요합니까?”라는 답변을 들었다는 시절이었다. 산악인들의 열의는 훨씬 높은 수준에 있었지만 히말라야 등반을 위한 동계훈련 중 조난사고로 원정대원 10명이 사망하는 사고(1969년를 겪으며, 당시 국내 등반기술에 대한 한계를 절감하고 있을 때였다.
한국등산학교는 1974년 6월 15일 도봉산 기슭 도봉산장에서 첫 입교식을 가졌다. 대한민국 첫 상설 등산교육기관이 태어난 것이다. 50년 동안 정규반 100회, 암벽반 52회, 동계반 48회 졸업생을 배출했고, 경찰구조대, 119구조대, 특전사 특별반까지 폭넓고 깊이 있는 산악교육을 펼쳤다. 남북교류에도 힘써 2005년과 2007년 동계반 교육을 금강산에서 실시하고 이를 계기로 북한구급봉사대 산악교육에도 나설 수 있었다.
“정신력 체력의 단련으로 국방에 기여함과 국토애 및 애국심 앙양.” 학교의 설립목적 중 하나인 이 문구를 지금 보면 시대착오적이라 느낄지도 모른다. 당시 시대적(전후 20년, 사회적 상황(군사정권기과 설립 과정의 어려움이 읽혀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비장하기까지 한 순수함과 강인함으로 50년 동안 이뤄낸 것이 참 많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때였다. 워낙 위험한 사고 현장이라 중장비를 쓰지 못하고, 인력만으로 로프를 묶어 무너진 건축물 잔해를 끌어올려야 하는 급박하고 험한 상황이었다.
“쏟아진 철근을 들어내야 사람도 구하고 시신도 찾을 거 아니에요. 그런데 로프를 에반스매듭(일명 교수인매듭으로 해서 사용하니 다시 풀지 못하고 칼을 찾아 자르고 로프를 새로 구해야 하는 등 어려워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다시 풀어 쓰기 좋은 클로브히치 매듭을 가르치며 사고현장을 누볐어요.” 당시 한국등산학교 강사였던 서성식의 재난구조 활동이 한국 소방구조대 창설로 이어졌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