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 한국사상선 간행의 말
서문
삼인행三人行
핵심저작
【김옥균】
1장 치도약론
2장 갑신일록
3장 마지막 상소
부록
소설 『청년 김옥균』에 부친 박영효의 증언
청산묘비문
【유길준】
1장 과문폐론
2장 언사소
3장 중립론
4장 서유견문
5장 흥사단 취지서
6장 소학교육에 대한 의견
7장 노동야학 독본 제일
8장 『대한문전』 자서
9장 『20세기지대참극 제국주의』의 서
부록
선친약사
【주시경】
1장 국문론
2장 국문
3장 국어와 국문의 필요
4장 한나라말
5장 큼과 어렵음
부록
『독립신문』 창간사
김옥균 연보
유길준 연보
주시경 연보
찾아보기
구한말 조선의 대표적 지성 3인의 엇갈린 삶
‘갑신정변의 혁명가, 고균 김옥균.’ 세간의 평가는 그의 섣부르며 성급했던 결정, 부득불일지언정 한반도에 일본을 끌어들여 그 영향력을 키워준 오판 등을 주로 언급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갑신정변이 단순히 김옥균 무리의 독자적인 쿠데타가 아니라 동아시아 전반을 뒤흔든 대격동의 출발점이었다고 못 박는다. 편저자는 갑신정변의 출발점으로, 멀리 베트남에서 일어난 청불전쟁(1884~85을 꼽는다. 청이 프랑스와의 전쟁으로 어수선한 틈을 타 김옥균이 대사를 감행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두가 알듯 김옥균의 시도는 실패로 끝이 나고, 그 뒤 청이 프랑스에 패하면서 청나라의 권력이 양무파에서 변법파로 넘어간다. 일본 역시 기존에 내걸었던 ‘아시아 연대’의 깃발을 내리고 ‘아시아에서 벗어나 서구사회를 지향한다’는 기조의 탈아입구를 선언하며 본격적인 침략의 길을 걷는다. 한마디로 갑신정변이 향후 동아시아 갈등과 분쟁의 씨앗이 된 셈이다.
김옥균 사상의 열쇳말 중 첫번째는 ‘조선프랑스론’이라 할 수 있다. 김옥균은 당시 영국과 프랑스가 각각 입헌군주제와 공화제를 따르는 것을 면밀히 비교했고, 특히 일본이 영국을 따라 입헌군주제를 선호한다는 것을 참고했다. 조선을 ‘아세아의 불란서’로 만들자고 했던 김옥균의 꿈은 곧 그가 “일본과 대결할 다른 조선”(16면을 꿈꾸었다는 말과 다를 바 없다. 두번째 열쇳말은 ‘삼화론(三和論’이다. 여기서 삼(三은 조선·청·일본을 가리킨다. 갑신정변 이전까지 김옥균은 반청(反淸을 분명히 했지만 그 뒤로는 삼화론을 통해 조선을 중립국으로 만들 것을 꿈꿨다. 즉 김옥균의 꿈은 “그 간신한 독립을 견지하면서 궁극에는 일본에도 청에도 당당한 프랑스 같은 강국을 세우는 꿈”(18면이었다.
그 어수선했던 시기에 김옥균이 이처럼 폭넓고도 날카로운 입론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실학 덕택이었다. 서울 재동의 그 유명한 환재 박규수의 사랑방이 김옥균과 그 동료들의 회의 장소였고, 그들은 그곳에서 자연스레 연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