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면서
할아버지를 그리워하며...
독립지사의 딸, 하나님의 딸
고귀하고 아름다운 가족 이야기
1부 아버지의 길
무관학교 출신의 대한제국 장교
기미년 3·1운동
청산리전투 제2보병 중대장… 대대장 역할을 맡다
아버지가 꿈꿨던 세상
하얼빈에서 펼친 애국계몽운동
일제의 매질로 고초를 겪으신 어머니
만주로 이동하는 가족들
하얼빈에서의 삶
광복이 되던 날
아버지의 귀국
온 가족이 김치장사를 하며
두만강의 달밤
2부 나의 길
금강소학교에서 미동초등학교로
6·25전쟁의 발발
두 번째 피란, 두 번째 전학
반전의 기회가 된 분홍신 사건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
일하며 공부하며
국립중앙의료원 의료 비서가 되어
공군 중위 이연흥을 만나다
나의 큰 오빠 홍기만
나의 올케언니 박경남
남편의 경제적 독립 운동
세월이 흘러서
끝으로
에필로그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
부록: 홍충희 애국지사 관련 사료
“많은 독립운동가와 그 가족들은 일제, 6·25전쟁을 겪으며 자신의 삶에 대한 기록 한 줄 제대로 남기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제 머릿속에 있는 아버지의 삶을, 그 아버지를 묵묵히 도왔던 우리 가족이 걸어온 가시밭길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제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그 애틋하고 절실했던 진실이 세월 속으로 영영 사라져 버릴 수도 있으니까요.
후손들에게 우리 가족의 진솔한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이제는 점점 잊히고 있는 나의 자랑스러운 아버지 홍충희 지사를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추앙하기 위해 이 책을 출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아버지가 살아 계셨더라면, 아버지의 활약상을 나보다 더 상세하게 알고 있었던 어머니와 오빠들이 살아 계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습니다. 나의 이런 시도가 수많은 독립운동가 후손과 여러분의 마음속에 독립운동에 대한 새로운 기억과 의미로 다가가기를 바랍니다.”
-저자 서문 중
홍충희 지사
홍충희 지사는 1878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우봉(禹峰이다. 1903년 대한제국 무관학교 보병과를 졸업하고 육군 부위를 지냈다. 1919년 3·1운동에 참여한 다음 만주로 망명해 북로군정서에서 활약했다. 1920년 청산리 전투에 대대장 서리 겸 보병 중대장으로 참전했으며 주력 부대장으로서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데 크게 공헌했다. 이후 독립운동 단체들의 통합을 위해 노력했으며 신민부 군사부 위원으로 활동했다. 1934년 하얼빈 안평가에 대종교 선도회를 설치하고 후학 양성과 애국계몽운동에 매진했다. 1942년 임오교번으로 대종교 지도자들이 대거 검거되자 기약 없는 피신 생활에 들어갔다. 1945년 하얼빈에서 광복을 맞이하고 한국으로 귀국했으며 1946년 1월 18일에 귀천했다. 26년간 이어진 독립운동의 공적을 인정받아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 받았으며, 1991년 대전 현충원 애국지사 1묘역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