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시 대동강면 대형 흙무덤의 축조 집단은 낙랑군과 관련이 없다.
그렇다면 이 무덤들을 만든 사람들은 누구인가?
평양시 대동강면 지역 대형 흙무덤의 축조 집단이 낙랑군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이 주장을 뒷받침할 문헌 자료와 고고학 자료는 부족하다. 그런데도 한국을 포함한 현재 동북아시아 역사학계는 지금의 대동강 지역을 낙랑군 설치 지역으로 주장하며, 대동강 지역을 포함하는 한반도 북부 지역의 기원전 1세기~4세기까지의 역사적 상황에 관한 연구를 하지 않고 있다.
이 책은 평양시 대동강면 대형 흙무덤의 축조 집단이 낙랑군과 관련이 없음을 관련된 고고학 자료와 문헌자료를 종합해 밝히고, 새롭게 이 대형 흙무덤의 축조 집단을 추정하여 고대 한반도 북부 지역의 역사적 상황을 조금이나마 밝혀내고자 한다.
흉노와 교역할 정도의 강력한 다른 집단이 대동강 일대 대형 흙무덤 축조 가능성
기원전 108년 서한(西漢 무제(武帝는 위만조선(衛滿朝鮮을 멸망시킨 뒤 그 강역(疆域에 4군(郡[낙랑군(樂浪郡, 현토군(, 진번군(眞番郡, 임둔군(臨屯郡]을 설치했다. 기원전 82년 서한 소제(昭帝는 진번군과 임둔군을 폐지하고 그 소속 현(縣을 낙랑군과 현토군에 편입했다. 3세기 초 동한(東漢의 요동태수(遼東太守 공손강(公孫康은 낙랑군 남쪽을 나눠 대방군(帶方郡을 설치했다.
한 4군 설치 지역은 고조선(단군조선ㆍ위만조선의 강역뿐 아니라 고구려ㆍ백제의 초기 중심지를 추정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해 한국 고대사에서 중요한 문제로 인식된다. 『삼국사기』 「지리지」에 고구려 주몽(朱蒙이 처음 도읍한 곳인 흘승골성(紇升骨城이 현토군의 경계라는 기록이 있다. 백제 온조왕은 처음 위례성(慰禮城에 도읍했지만, 낙랑군과 계속해서 군사적으로 충돌했기에 도읍을 한성(漢城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한 4군의 설치 지역은 낙랑군을 중심으로 추정되고 있다. 낙랑군은 여러 역사책(史書에 나머지 3군보다 그 설치 지역을 추정할 수 있는 기록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낙랑군의 설치 지역은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