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유영하는 존재에게 바치는 그림
『그건, 고래』가 글로써 고래 된 인간의 새로운 천성을 다룬다면, 이 작품을 관통하는 그림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한다. 푸르뎅뎅하게까지 보이는 잿빛 도시의 아침에서부터 사위가 어두워지고 새로운 해가 암시되는 근교의 새벽까지를 붓은 부지런히 움직여 내보인다. 하루의 안에서 도시에서 자연으로, 작은 강줄기에서 바다로 나아가는 그림은 『그건, 고래』의 텍스트를, 연결되어 있음을 인식한 ‘인간’을 주제로 삼은 그린이 선택의 결과다. 작은 순간의 아름다움을 흘려보내지 않는 삶, 자신의 근원을 간직하는 삶을 꿈꾼 그린이 소망의 결과다. ‘바다’는 생명의 시작점이자 고래가 사는 곳이므로, 도시에서 바다로 나아간다. 장면장면은 어딘가 있을지도 모르는 공상 속 장소나 한때 있었으나 사라진 추억 속 장소 대신에 지금의 서울을 담는다.
『그건, 고래』는 낱장의 페이지가 엮여 단단한 책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오래 기억되는 순간들이 쌓여 한 삶을 단단하게 일군다는 것, 우리는 언제나 되태어나고 있다는 것을 환기한다.
책 속에서
“우리가 고래가 되면 삶은 나아질까?” 어른이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훨씬요.”라고 아이는 대답했습니다. “고래가 된 우리들 앞에는 반듯한 육지 대신 눈부시게 엉킨 수중세상이 펼쳐지겠죠. …더는 정돈한다는 핑계로 다른 존재를 못살게 굴 수는 없을 거예요.”
--- pp.5-6
쓸모없는 뒷다리는 녹아 사라지고, 지느러미가 된 앞다리로 물살을 가르는 장면을 상상해봐요. 어떤 기분일까요. 커다란 저항이라고 여기던 것을 부스러기만치도 안 느끼며, 턱, 턱, 해치고 가른다니 말예요.
--- p.13
빛과 언어가 미치지 않는 곳은… 숨 막히도록 고요할까요, 아님 그 반대일까요?
--- p.19
먹이사슬 맨 꼭대기에 있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다른 생물에게 과시하거나 윽박지르지 않을 수 있다면… …꼭대기 중의 꼭대기, 그중에서도 맨 꼭대기를 두고 이미 꼭대기에 있는 이들끼리 힘겨루기하지 않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