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미지의 세계를 향한 모험이며,
위험을 감수하려는 자만이 예술을 탐험할 수 있다.”
로스코의 그림과 함께 내면의 미지를 탐구하다
로스코는 어째서 캔버스를 색으로 가득 채웠을까? 그가 처음부터 추상화를 그린 것은 아니었다. 1920~1930년대에는 경제 대공황으로 고통받은 인물을 묘사하는 사실주의 화가였고, 1940년대 중반까지는 신화적 소재를 바탕으로 초현실주의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그가 그림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것은 “비극, 황홀경, 운명”과 같은 인간의 보편적인 경험과 감정이었고, 사실주의와 초현실주의는 이를 전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었다. 그는 자신의 캔버스 속 형상들, 즉 풍경, 인물, 추상적 형태가 모두 자신의 목표를 방해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들은 그가 그린 ‘형상’이 현실의 어떤 대상을 묘사하는 것인지 궁금할 뿐, 그가 전하고자 하는 보편적인 경험과 감정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의 그림을 감상하며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길 바랐다.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과 경험이 모두의 내면에 존재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나는 추상주의자가 아니다. 나는 색의 관계나 형태,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다. 나는 단지 인간의 근본적인 감정들, 비극, 황홀경, 운명 같은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_마크 로스코
그는 어떠한 것도 재현하지 않는 순수한 추상화만이 어떤 사람에게도 동등한 방식으로 다가갈 수 있고, 관객 역시 아무런 선입견을 지니지 않는 상태로 감상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에게 추상은 목표가 아니라 적합한 표현 도구였다. 로스코는 모든 형상을 지우고 묽은 물감을 층층이 쌓아 안쪽에서 빛을 발하는 색면을 그렸고, 이 “내면의 빛”으로 관객이 그림과 교감하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도록 만들었다. 로스코의 그림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관객은 그림이 아닌 자신의 내면 속 미지의 세계에서 감동을 발견한 것이다. 마크 로스코의 색면추상화는 누군가 바라보기 전까지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않는다. 그림 앞에 선 관객과 교감하는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