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경찰서 폭파에서 효제동의 총성까지, 10일 동안의 기록
2015년 개봉해 1,2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던 영화 《암살》에는 독립군 남자현 의사를 실제 모델로 한 독립군 저격수 안윤옥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이 ‘안윤옥’이라는 이름은 위대한 독립운동가인 안중근, 윤봉길, 김상옥 의사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을 따서 만들었다고 한다.
《경성의 봄, 1923》은 이 세 분의 독립운동가 중에서 상대적으로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김상옥 의사의 삶을 다루고 있다. 특히, 김상옥 의사의 길지 않은 삶 중에서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지고 경성 시가지에서 일본 군경 1,000명과 맞선 “일 대 천 전투”를 벌인 후에 34세의 젊은 나이로 순국하기까지 10일 동안의 기록을 소설로 재구성했다.
소설을 읽는 동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평화로운 ‘서울’이 치열했던 역사적 사건의 현장이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100년 전 34세 젊은 나이로 순국한 김상옥 의사의 삶은 우리에게 과연 어떤 삶을 살아야할 것인가를 되짚어보게 한다.
종로경찰서 폭파와 “1 : 1,000의 전투”의 의미
김상옥 의사는 1923년 1월 12일 항일 투사들에 대한 탄압과 고문으로 악명 높은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했다. 일제 식민지 지배 아래에서 종로경찰서는 조선인에게 원한과 분노, 그리고 공포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종로경찰서 폭파 사건은 억압받는 조선인들의 울분을 해소하고 조선의 민족혼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 사건이었다. 그리고 10일 후인 1923년 1월 22일에는 일제 군경과 1:1000으로 맞서 싸우다가 34세의 젊은 나이로 순국했다. 특히, 이 사건은 안중근 의사나 윤봉길 의사와는 달리 당시 식민지 지배의 중심이었던 경성, 그것도 경성 한복판에서 무장 항거를 했던 독보적인 사건이었다.
이 두 사건의 역사적 의미는 분명하다. 1919년 3.1 운동을 무력으로 잔인하게 진압했던 일본은 이후 ‘문화 통치’라는 것을 내세워 마치 세상이 평화롭고 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