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먼 우주의 존재가 남긴
놀랍도록 친숙한 기록
‘우리는 어디서 왔을까’라는 오래된 질문에 대한
아주 독특한 대답
어느 날 눈을 떠 보니,
수성이었습니다
어느 날 눈을 떠 보니 지구였습니다, 라고 지구인이라면 누구나 말할 수 있겠지요. 혹시 당신이, 지구가 아닌 어딘가에서 왔다는 사실을 남몰래 숨긴 채 살아가고 있는 외계인이 아니라면 말이죠. 하긴, 생후 몇 개월이 아니고서야 그 첫 탄생의 순간에 대한 기억은 이미 모두 잊혀졌겠지만 요. 그런데 여기, 어느 날 눈을 떠 보니 수성이었던 사람이 있습니다. 아니, 사람이 아니라 어떤 ‘존재’라고 해야 할까요. 게다가 그 존재는, 우리 인간과는 달리 처음부터 언어를 구현할 줄 알았습니다. 그 언어로 기록을 남길 줄도 알았고요. 먼 훗날, 그가 태양계의 각 행성을 차례대로 돌아가며 지낸 평생의 기록이 지구인에게 발견됩니다. 그렇게 ‘태양계 일기’는 시작됐습니다.
푸른 별 눈부신 청춘과
붉은 별 눈 시린 해방
그는 수성에서 첫 걸음마를 뗀 것에서부터 시작해,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로 진짜 모험을 갈망하기 시작한 금성, 푸름을 밝히는 빛 같은 친구를 만나게 된 지구 등 각 행성에서 꼭 그 행성과 닮은 모양의 한 시기를 살아갑니다. 그의 기록을 따라가며 우리는 청춘을 지배하는 펄떡이는 생명력과 또 그만큼의 뜨거움을 지닌 고통을, 고통을 마주하는 인내와 인내 끝의 해방감을 차근차근 만나게 됩니다. 인생의 한 고비를 겪고 나서 이젠 모든 것을 다 알겠다고 생각한 순간 닥치는 고난과, 바로 그 고난이 선사하는 구원의 의미도 알게 됩니다. 고난은 우리를 지나간 일이 아니라 ‘바로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눈을 뜨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안으로, 안으로만 도망치듯 파고들던 시선으로부터, 나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바깥 세계로 뻗어 나가는 눈길로의 해방은 곧 구원의 다른 이름이니까요.
주어진 시간의 몫을 다한 몸이 그리는 평화
하지만, 시간의 유한함은 예외를 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