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시민이 되고 싶습니다
1 출근길 지하철은 왜 안 되는 건가요?
톱니바퀴에 이쑤시개가 하나 끼어버린 거야 / 대표님은 나한테 고마워하셔야 하는 거 아니냐고 / 1퍼센트가 됐건, 5퍼센트가 됐건 어떤 역에서는 여전히 툭하면 추락 사고가 나는 휠체어 리프트를 타고 이동해야 해요 / 이 정도가 어디냐, 있는 거 잘 타고 다니면 되는 거 아니냐고 / 비장애인들한테 그렇게 했다가는 아주 난리가 날걸? / 결국에는 돈 달라는 거였냐고들 하는데요. 맞아요 / 우리는 지금 돈보다 권리가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거예요 / 이 국가가 장애인들에게 해온 역사는 매 순간 테러였어요 / 그렇게 사는 게 정말로 사는 건가요? / 억압과 차별이란 게 대부분 그래요 / 권리가, 사람의 존엄이 돈 논리를 이겨먹을 때까지 / 이 세상을 바꿀 힘은 우리 자신에게 있어요
2 우리의 생명은 ‘비용’보다 소중하다
이제는 국가가 직접 죽일 수가 없으니까, 장애인들이 알아서 죽게 만들어요 / 기재부는 정말로 한국판 T4 본부예요 / 부자들이 예산 좀 더 받으려고 우리처럼 도로 막고, 지하철 막고, 바닥에서 기어대는 거 봤어요? / 우리는 모두가 이 죽음들에 대해서 공범인 거예요 / 슬퍼하지 않는 것들을 제대로 슬퍼하게끔 만들어내는 거예요
3 탈시설이란 말이 어렵다고요? 그럴 리가요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자”는 구호를 외치는 운동이 장애인 탈시설운동 말고 또 어디에 있나 / ‘시설에서 문제가 있었다’랑 ‘시설 자체가 문제다’는 어마어마한 차이잖아 / 중증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 수 없긴, 뭘 살 수가 없어 / “시설에서 사는 것도 장애인 당사자의 자기결정권”이라고? / 이건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는 거고, 그럼 그 구조를 바꿔야 하는 거지 / 네, 저희는 이미 대안이 있고요, 이 문제는 정말 쉽게 해결될 수 있어요 / 그렇게 돼도 장애인 가족들이 반발을 할까? / 탈시설은 UN에서도 공식적으로 추구하는 방향이죠 / 불안과 고통이 없는 자유로운 일상이라는 건 있을 수가 없는
당연한 일상의 폭력을 멈춰 세우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투쟁의 기록
2021년 12월 3일 출근길 아침, 서울 시내 지하철역에 한 무리의 장애인들이 나타났다. 열차 운행이 지연되고 시민들은 혼란에 빠졌다.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 활동가와 회원 들이 지하철 승강장에 모였다. 1년여가 지나자, 서울교통공사는 이들이 모인 지하철역을 무정차 통과 하기로 결정했다. 2023년 말부터는 승강장에 머무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시민의 발, 지하철은 장애인권을 외치는 이들 앞에서 굳게 문을 닫았다. 그 싸움이 어느덧 햇수로 4년째를 맞이했다. 뜨겁던 취재 열기는 사그라들었고 시민들의 일상 속에서 그들을 둘러싼 논쟁도 차츰 잦아들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매일 아침 8시 지하철 승강장에 모이고 있다. 연행되고 쫓겨나고 “욕설과 혐오의 무덤”에 파묻히면서까지 출근길 지하철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하필 지하철인가?’, ‘정치를 하려면 국회로 가라’, ‘합법적으로 요구하라’는 말에 “감히 출근길에 장애인들이 집단으로 지하철을 타는 망극한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공동대표가 답하는 책 《출근길 지하철: 닫힌 문 앞에서 외친 말들》이 출간되었다.
“혼자만의 경험으로 남겨두기에는 장애인운동으로부터 받은 게 너무 많다”는 그는 “출근길에 지하철 타는 행동을 시작할 때부터 어떻게 살지보다 어떻게 죽을지를 더 많이 고민”하며 세상에 남아 있는 다정한 동료들에게 자신이 받은 것들을 나누기로 했다. 많은 이들에게 낯선 사실일 수 있겠으나 전장연이 지하철에 처음 출몰한 것은 2021년이 아니다. 2001년 오이도역 휠체어 리프트 추락 참사에 대한 항의로 서울역 지하철 선로를 점거한 이후 그들은 한 해도 지하철을 떠난 적이 없다. 그러므로 왜 지하철인가 하는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 박경석 활동가는 1988년 그가 처음으로 집회에 나가고 농성에 참여한 때부터 장애인운동을 해온 모든 시간을, 이동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