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이의 말
“메이야수는 강한 상관주의가 절대자의 불가능성을 선언하면서 이성을 온갖 종교적 신화에 노출시켰다고 진단 내린다. 형이상학과 절대자의 관념이 낡았다는 주장과 함께 종교는 유일신을 증명하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대신 온갖 종류의 신앙을 허용하게 되었다. 현대 철학 역시 종교의 이런 탈절대화적 양상을 좇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듯 상관주의로부터 파생된 사유의 경향들 속에서, 메이야수의 사변적 실재론은 바디우가 서문에서 말하고 있듯이 ‘사유의 운명이―‘종교적인 것의 복귀’가 영혼의 허구적 보충물을 제공해 주는 가운데 우리가 자족해 하는 저 단편들과 부분적 관계들이 아니라―절대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정당화한다’. 그는 이 첫 저서에서 회의주의적, 혹은 신앙절대론적인 경향의 현대 철학에 맞서서 다시금 절대적인 것에 대한 사변을 시작할 것을 우리에게 촉구한다. 그렇지만 그는 현재의 시각에서 일종의 사유의 감행일 수 있는 절대자의 회복을 단순히 주장하는 대신―사실상 우리가 대다수의 현대 철학자들에게서 발견하는 것은 어떤 프로파간다적 형태다―매우 세련된, 그렇지만 동시에 매우 과감한 논증의 방식으로 그 타당성을 전개하고 있다. 그리하여 아리아드네의 실을 따라가듯이 그의 논증을 따라가는 것이 이 책의 독서에 있어 또 다른 즐거움을 안겨줄 것이다.”
책 속에서
“용어를 정하자. ―우리는 인간 종의 출현에 선행하는―심지어 집계된 지구상의 전 생명 형태에 선행하는―실재 전부를 선조적인 것이라고 명명한다. ” (1장. 선조성
“과학자는 자신이 기술하는바 선조적 사건이 확실히 일어났다고 단호한 방식으로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적어도 칼 포퍼 이래 우리는 실험과학을 통해 발전된 모든 이론이 원리상 수정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더 다듬어지거나 경험에 더 일치하는 이론을 위해 선행하는 이론이 거부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진술이 참이라고 가정할 이유가 있다고 과학자가 생각하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