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남 5녀 막내딸 총각 아가씨,
언니들과 다른 삶을 살겠다고 마음먹다
황해도 배천에 학교를 세 개나 지은 교장 선생님 댁 막내딸 별명은 총각 아가씨였어요. 은희라는 이름은 학교에 들어갈 때쯤에야 얻을 수 있었지요. 여자아이들은 남자아이들과 다르게 이름 가지는 것도 쉽지 않던 시절이었지만 은희는 어릴 때부터 남달랐어요. 달리기 시합에서 기발한 생각으로 일 등을 하기도 했고, 그 당시 대부분의 여자들 그리고 은희의 언니들과는 다르게 공부도 하고 싶었지요.
부모님의 지지와 허락을 받은 은희는 마침내 큰 도시의 여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일제 강점기의 억압 속에서 공부하며 배움을 향한 열망이 더욱 커졌어요. 일본에 짓밟히지 않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우리 역사와 문화를 공부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지요.
교복 치마를 잘라 임금의 죽음을 애도하고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다
일본 유학 장학생이 된 은희는 우선 일본어 실력을 갖추기 위해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에 편입했어요. 그곳에서 독립운동 비밀 서클을 운영하는 박희도 선생님과 서클 동지들을 만났지요. 은희는 서클에서 활동하며 독립을 향한 의지를 다지게 되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고종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어요. 하지만 일제의 삼엄한 눈초리 아래 임금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도 쉽지 않았지요. 그때 은희는 자신의 교복 치마를 내놓아 친구들과 함께 슬픔을 표현할 나비 상장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1919년 3월 1일, 민족 대표 삼십삼인이 독립 선언을 할 때 만세 운동에 참여했지요. 그 때문에 서대문형무소에 갇히기도 했지만 은희는 용감하게 맞섰어요. 일본 연호가 쓰인 졸업장을 거부한 은희는 이후 고향 배천에 가서도 독립운동을 이어 나갔어요.
특종 잡는 여기자,
신문계의 패왕이 되다
배천에서의 독립운동으로 감옥에 갇혔던 은희는 풀려난 이후 일본 유학을 떠났어요. 3학년 여름 방학을 맞아 귀국한 어느 날, 신문사 기자로 입사하라는 뜻밖의 제안을 받았지요. 은희는 아직 학생 신분이었기에 고민했지만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