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머리에
1장 일본의 한국 통치와 구마모토 출신자 인맥
1. 시작하며
2. 한성신보의 창간과 구마모토국권당(熊本國權黨
3. 낙천굴(樂天窟과 구마모토현 유학생
4. 나카무라 겐타로(中村健太郞와 경성일보·매일신보
5. 도쿠토미 소호와 조선 문화
6. 마치며
2장 한국 병합 전후 시데하라 다이라의 행적과 교육론
1. 시작하며
2. 일본의 조선 교육사정 조사와 교육방침 책정
3. 시데하라의 도한과 참여관 취임
4. 시데하라의 조선 교육론
5. 마치며
3장 ‘조선군인’ 가네코 데이이치와 대아시아주의운동
1. 시작하며
2. 가네코 데이이치의 생애와 경력
3. 가네코 데이이치와 만주사변
4. 가네코와 조선대아세아협회
5. 가네코의 민족론 및 조선관
6. 마치며
4장 재조일본인 중의원 의원 오이케 주스케
1. 시작하며
2. 제국의회와 식민지 조선 관계 의원
3. 제12회 총선거와 오이케 주스케의 활동
4. 오이케의 의정활동과 당선 무효 소송
5. 마치며
5장 재조선 일본인 저널리스트의 조선통치정책론 비교
1. 시작하며
2. 융합·동화정책에 대한 찬반론
3. 내지연장론’과 ‘조선자치론’
4. 문화정치’에 대한 비판
5. 마치며
6장 다키 구메지로의 조선 진출과 농장 경영
1. 시작하며
2. 조선 시찰
3. 토지 매입
4. 농장 경영
5. 소작쟁의
7장 ‘동성동본’=‘동족’이라는 상상
1. 시작하며
2. 촌락 조사와 ‘동성동본’ 마을의 발견
3. ‘혈연공동체’로서 ‘동족부락’의 발명
4. ‘동족부락’과 식민지 정치학
5. 마치며
참고문헌
초출일람
지은이 소개
색인
조선의 식민지시기에 지배의 실질적인 ‘주체’였던 재조일본인에 주목하다
재조일본인은 어떻게 규명되어야 하는가?
‘제국 일본’이라는 패러다임 하에 식민본국과 식민지 간의 상호작용한 연구에서 재조일본인은 빼놓을 수 없는 존재로서 반드시 주목해야 할 것이다.
식민지시기 재조일본인은 1910년에 약 17만 명에서 1945년에는 약 75만 명으로 늘어났다. 이들 가운데 약 20만 명은 식민지 조선을 지배하는 실질적인 ‘주체’였다. 재조일본인 엘리트는 식민지배와 깊은 관련을 갖고 있었으며 관료, 경찰, 판검사, 금융가, 학자, 언론인, 의사, 지주, 자본가, 상인들로 지배적 지위에 있던 이들도 포함할 수 있다. 이들은 주로 1905년 이후 조선에 와서 각각 자기 분야의 전문적 지식을 토대로 조선을 조사하고 연구했으며, 이를 토대로 지배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재조일본인 엘리트는 일본인으로서 식민지 조선을 개발하고 피식민자인 조선인을 지도하는 위치에 서려고 했다. 이들은 식민권력과 식민정책에 협력하기도 했지만, 때로는 갈등을 일으키기도 했다. 또한 본국의 일본인과 동일성을 공유하면서도 그들과 차이성을 갖는 특수한 존재였다. 따라서 식민지시기 조선에 관한 연구에서 각 분야에서 활동하던 재조일본인의 존재 형태에 대한 연구는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나가시마 히로키는 「일본의 한국통치와 구마모토 출신자 인맥—나카무라 겐타로(中村健太郞를 중심으로」(1장에서 한국통치와 일본 지역과의 상관관계를 다루고 있다. 특히 구마모토 출신자에 주목하면서 나카무라 겐타로의 언론활동을 중심으로 그들이 왜 한반도 언론에 관여했는지를 밝히고 있다. 조선어를 아는 구마모토 출신자들은 조선어를 구사하며 현지 사회에 침투하여 기반을 쌓아갔다. 이 글에서는 언어를 매개로 의사소통이 가능했던 일본인 조선어 통역의 존재는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나아가 일본통치하의 한반도에서 조선총독부의 ‘어용지’로 불린 『경성일보』, 『매일신보』와 그 경영에 깊이 관여했던 구마모토현 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