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렇게 목소리가 작냐며 나무라는 선생님, 표현을 잘 못한다며 나를 답답해하는 엄마. 주변에 산재하는 지적과 비교에 계속해서 위축되어 왔던 열세 살 새벽이. 어딘지 강해 보인다고 용기를 주는 수지의 생일 축하 글에도 동조하지 못하고 자신감 없는 태도로 일관하던 새벽이는 엄마 배 속으로 돌아가서야 말의 힘을 실감한다. 할 수 있다고 힘을 내라는 의사 선생님의 응원, 사랑한다는 엄마의 고백. 세상 모두가 자신을 두고 아름답게 이야기하던 시간들 속에서 무채색이었던 새벽이는 다채로운 색으로 채워진다.
“얼마 안 남았다. 곧 새벽이다.” 넌 할 수 있어. 곧 새벽이 온다……. 엄마와 아저씨의 목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나도 모르게 입술을 열고 소리를 내었다. “새벽이 온다! 나는 산다!” 입에서 나간 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글자 기둥을 이루고, 밧줄이 되었다. 스르륵, 내 몸에 다가와서 착 감겨들었다. ‘새벽이 온다. 나는 산다.’ 오직 그 두 마디 말만 꼭 붙들었다. 내 생각과 말에 따라 말소리 밧줄이 묶이거나 풀렸다.
(본문 중에서
사람들의 말을 타고 위기의 소용돌이를 헤쳐 나가는 새벽이. 마침내 자신의 목소리로 스스로에게 힘을 불어넣는다. 흔들리는 어둠이 끝나고 단단하고 환한 새벽 속에서 다시 두 아이가 된 새벽이는 서로를 알아본다.
“아기들은 머리 꼭대기 정수리에 ‘숨골’이라는 데가 있대. 그 밑에 우주랑 소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아기는 자기 머리를 살짝 만져 보고 곧 내 머리 위를 쓰다듬었다. 내 머리에 손을 댄 아기가 또박또박 말했다. “여기도 있잖아! 물론 나처럼 부드럽고 말랑말랑하지는 않지만 말이야.” “그래?” 나도 아기와 나의 머리를 번갈아 만져 보았다. 머리 꼭대기 밑에 뭔가 중요한 게 숨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몸속 깊은 곳과도 연결되고, 몸 바깥과도 연결되는 어떤 지점 말이다. …… 생각해 보니 복잡할 것이 하나도 없었다. 우리 모두는 연결되어 있고, 지나간 시간도, 다가올 시간도 현재의 순간 안에서 다 소통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