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의 글
한국어판을 내면서
머리말
여는 장_ 재일한국인 2세로 태어나서
유년 시절|주오(中央대학 코리아문화연구회|첫 모국 방문
1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 조작 사건과 사형 판결(1975년 12월~1979년 8월
모국 유학과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 조작 사건|고문과 강제 자백|서대문구치소|전방(轉房|학생과 민주 인사들|검사 취조와 민향숙 구속|성서와 만남|첫 출정(出廷|최후진술|가톨릭 세례|항소심|두 번째 사형선고|김수환 추기경님의 강론|아버지 생각
2 서대문구치소 생활(1976년 5월~1979년 8월
일반수들과 잡거방 생활|옥중 하루는 나팔 소리로|인왕산의 목탁 소리|식사|칼잠|구치소에서 목욕|옥중의 추위|수갑에 자물쇠를|신고식|악마 같은 주 부장|같은 방 일반수들|진정한 학문|프로 야간 스포츠맨|전과 7범의 말|동전 위조죄|우스갯소리|요(要시찰|어느 민주 인사|사형장|관에 내 이름이|사형 집행|홍창기(가명|사형수들 이야기|사형 집행을 탄원한 사형수|무등산 타잔
3 잊지 못할 사람들(1977년 3월~1979년 8월
꿈 이야기|리영희 교수님과 김지하 시인|첫 투쟁|드디어 승리!|징벌방|커다란 교훈|민향숙의 이감과 묵주 교환|광주의 민향숙|재일동포 박순조 씨|박순조 씨 후일담|박현채 교수님|고대생 이범 씨|갑작스러운 호출|감형|민향숙과 재회|이감
4 대전교도소 특별사동 제6사(1979년 9월~1981년 11월
특별사동 제6사|《내 삶의 길을 찾으려도》|구원 운동 친구들|비전향 장기수 선생님들|인민혁명당 사건|임구호 씨 아버님|최건석 씨|붉은 별 사건|손성수 씨|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대전 6사 10·26 사건|사상 전향 공작 전담반|전향 공작의 폭행|특사의 영화 감상과 옛 동지의 반공 강연|어머니의 죽음|어머니 생각|어머니 이름|1980년 5·18|선생님들의 고마움|6사에서 옥중 투쟁|타전|만세 반공법과 무전기 사건|김대수 박사님|김동기 선생님의 말|검방|톱밥 김치 사건|전향서와 감형
5 대전교도소 서화반 시절(19
“저자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육체노동을 하면서 자투리 시간에 써 내려간 메모는 일반사회와 격리됐던 정치범의 수용 실태에 관한 핵심 당사자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작지 않다.”
책에는 저자가 간첩으로 조작되기 전 이야기부터 감옥에서 겪은 희로애락까지 생생하게 담겨 있다. 그중에서도 리영희, 박현채, 김지하, 신영복, 서승 등과 옥중에서 만난 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특히, 대전교도소 서화반에서 만난 신영복과의 일화에 이 책의 제목이 된 ‘장동’이라는 이름에 얽힌 이야기가 들어 있다.
대전 서화반에서는 여러 명이 생활하는데 화장실이 하나밖에 없어 일 보기도 바빴다. 어느 날 내가 화장실에 가려고 하자 신영복 선생님이 웃으면서 “이철은 장똥이니까 나를 먼저 보내 줘. 난 단똥이라 시간도 안 걸린다”라고 하셨다. 그때부터 우리는 서로 “단똥 선생이 먼저!”, “장똥 선생은 나중에” 하며 장난치기도 했다. 그러다가 서예 작품을 제작하는데 호가 필요하게 되었다. 나는 생각하기가 귀찮기도 하고 또 ‘장똥’이라는 어감도 그리 나쁘지 않아서 긴 동쪽 나라(일본은 동쪽의 긴 나라에서 온 사람이라는 뜻에서 ‘길 장 자, 동녘 동 자’, ‘장동’을 나의 호로 쓰기로 했다. 서화반 사람들은 나의 그런 호를 놀려 웃기도 하였으나 나는 개의치 않았다. 그 옛날 요순시대 순임금이 ‘동방에서 왔다(즉 조선에서 왔다’고 기록되어 있듯 나도 기다란 동쪽에서 온 사람이라는 의미를 나타냈다. 그래서 내 서예 작품에는 장동이라는 낙관이 찍혀 있고 또 이 책도 ‘장동일지’라고 제목을 붙였다. _ 234쪽
그 밖에도 책에는 처우 개선을 요구하다 무자비하게 구타를 당하고 감옥 안의 감옥인 ‘징벌방’, ‘폐쇄 독방’에 수용됐던 옥중투쟁이 상세히 묘사돼 있다. 특히 저자가 대구교도소 수감 시절 주도한 단식투쟁인 ‘대구 7·31 사건’은 당시 좌익수들이 가혹한 폭행과 진압을 뚫고 승리한 투쟁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한편, 그가 이처럼 힘든 생활과 투쟁을 견디게끔 힘을 보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