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들의 싸움에 맞서 그림으로 말하다
누군가의 ‘말’은 크고 웅장하게, 반복적으로 울려 퍼지는 반면 누군가의 ‘말’은 애초에 발화되지도 못한 채 봉인된다. 또 어떤 ‘말’은 엄청난 사회정치적 파장을 만들어 내지만, 어떤 ‘말’은 발화되자마자 지워져 버린다.
2017년, 신고리 5·6호기 원자력발전소 ‘공론화위원회’에서는 장기적으로 원자력발전을 축소해 나가되 건설 중이던 원자력발전소는 경제적 손익을 고려해서 계속 짓는 것이 좋겠다는 권고안을 내놓는다. ‘밀양 할매’는 이 공론화의 장에서 ‘전문가’도 아니었고 ‘당사자’도 아니었다. 그리고 ‘당사자’도 아니고 ‘전문가’도 아닌 이들은 이 공론화의 장에서 제대로 발언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공론화위원회의 발표 이후 말을 잃은 할머니들은 그림을 그리며 다시 ‘말’을 나누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림을 통해 말로 표현하지 못한 ‘목소리’를 드러낸다. 이 책은 ‘밀양 할매’를 비롯해 자기 자리를 갖지 못한 ‘목소리’들이 내려앉을 자그마한 자리 하나를 만들기 위해 기획되었다.
‘생명’의 편, ‘살아 있는 것’들의 편
‘밀양 할매’의 송전탑 그림에는 언제나 꽃과 나무와 새들이 있다. 그리고 ‘밀양 할매’는 송전탑을 뽑아 그 땅을 꽃과 나무와 새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밀양 할매’는 생명을 지키고 가꾸기 위해 ‘송전탑’에 반대하고 ‘원자력발전’에 반대한다. 그리고 꽃과 나무와 새들을 비롯한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강건하고 담담하게 싸워 왔다.
‘밀양 할매’는 송전탑을 생명을 위협하는 괴물로 인식한다. ‘밀양 할매’가 그린 송전탑은 모두 영화에 등장하는 거대 로봇 괴물을 닮았다. 할머니들에게 송전탑은 ‘남의 편’이지만, 진달래나 소나무는 ‘내 편’이다. ‘밀양 할매’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생명’의 편, ‘살아 있는 것’들의 편이다. 그래서 이 고단한 싸움을 중단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회운동의 어른이자 신념에 찬 활동가로서 ‘밀양 할매’
이 책에서 호명하는 ‘밀양 할매’